검은 모자를 쓴 여자
권정현 / 자음과모음 / 1만1천700원  
 

이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의 고딕 호러와 아멜리 노통브 「머큐리」와 같은 심리 미스터리 장르를 교묘히 결합해 개인에게 일어나는 공포와 불안심리를 현실적인 긴장감이 넘치게 선보인다. 주인공 주변에서 크고 작은 미심쩍고 기이한 사고들이 발생하고, 그 사고의 원인과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구가 그녀를 사로잡으며 이야기는 펼쳐진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끝없이 의심케 하는 밀도 있는 전개는 읽는 이를 점점 더 작품 속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진실과 거짓이 빈틈없이 얽혀 경계가 사라지고 ‘내가 인식하는 세상’만이 오로지 진실이 되는 공간. 그곳에서 작가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나눌 수 없는 내면의 혼돈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드러내며 인간의 고통과 불행이 외부와 내부, 그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우리에게 질문한다.

이 작품은 불안을 겪는 인물의 내면 심리와 행동 양상을 밀도 있게 조명함과 동시에 미스터리적 요소를 곳곳에 촘촘히 배치해 페이지를 넘길수록 빠져드는 흡입력을 가졌다. 그로 인해 독자에게 미스터리라는 이름의 늪을 헤매는, 그리고 헤맬수록 더 그 늪에 가라앉는 듯한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 소설은 전반에 걸쳐 자신이 믿어 온 견고한 행복이 밀물의 모래성처럼 고요히 무너져 내리고, 다시는 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간이 드러내고야 마는 날것의 내밀한 광기가 대담하게 흩뿌려져 있다. 작가는 그를 통해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의 당연한 행복이 부서진다면 당신의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

현진건문학상과 혼불문학상을 수상하며 날카로운 상상력과 생생한 묘사로 흡입력 넘치는 작품세계를 펼쳐 온 권정현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새 소설 시리즈 아홉 번째 작품인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기묘한 사고로 아이를 잃은 여자의 혼란을 통해 상실감에서 기인한 불안을 집요하게 조명한다. 

영화가 뭐라고
안소희·주화 / 퇴근후작당모의 /1만6천200원
 

이 책은 영화의 시작단계인 기획부터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까지,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경력 1년 차부터 15년 차 사이의 한국 영화 스태프 32명과의 대화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한 영화에는 작품을 대표하는 사람들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엔딩 크레딧 속 사람들이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종사했던 인터뷰어·지은이 두 명은 자신들의 동료를 인터뷰하며 이들의 일과 고민을 담아냈다.

영화가 뭐라고, 우리는 이 일을 선택했고 애정하며 애증하기 이르렀을까?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우리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라는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 이미 영화계에서 일하지만 정작 동료들의 일과 고민은 잘 몰랐던 사람들, 또 한 번이라도 엔딩 크레딧 속 이름들이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2021년 7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인기 추천 프로젝트로 등재되기도 했다. 영화와 함께 멋지게 성장 중인 한국 영화 스태프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영화와 엔딩 크레딧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던져줄 것이다.

다산의 철학
윤성희 / 포르체 / 1만5천120원
 

이 책은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인문학 편지다. 다산이 올곧이 지켜온 철학에서 발견한 인생의 방향성,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32가지 다산의 통찰을 만난다.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며 끊임없는 요구를 쏟아내는 세상에서 부담과 혼란을 느끼며 살아간다.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에게 알맞은 속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다산의 철학을 보여 준다. "마음을 놓고 염려하지 말고 천천히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합당한 도리이니…." 다산이 큰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견한 이 문장은 우리보다 한참 앞서 달려가는 시간을 따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마음을 위로한다.

저자는 정약용이 살았던 조선시대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그 사이의 접점을 포착해 다산의 편지에 담긴 그의 철학을 현재의 시점에 알맞게 녹여 냈다. ‘사는 게 버거울 때는 잠시 쉬어 갈 것’, ‘꿈을 잃지 않되 현실에 충실할 것’ 등 저자가 현대적인 시각으로 발견한 실천 방향은 수많은 이야기가 쉬지 않고 오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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