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시의회 수석전문위원
임조순 인천시의회 수석전문위원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올해 20조 원가량이던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포함) 예산을 6조 원으로 줄인다고 말했다. 충격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그 효과가 분명하고 국민들의 정책적 호응도가 높은 사업 예산을 갑자기 77.2%나 삭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역화폐는 초기 6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1천억 원에 머물던 것이 올해는 231개 지자체에서 15조 원이 넘는 규모가 발행됐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사업이 도입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공동체 복원이라는 지역화폐 본연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시점이기에 정부의 이번 예산 삭감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도 기획재정부는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지역화폐 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어 "애초 한시적인 사업이었고, 지자체의 고유 업무"라는 장관의 말은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좋다는 지역화폐로 인해 손해를 보는 이들이 그 손의 주인일 것이다. 

국회의 2022년 예산심의 과정에서 지역화폐예산이 어떻게 확정될지 지켜보면서 우리 지역 인천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인천은 2018년 인처너 카드를 시작으로 지역화폐 정책이 추진됐고, 2019년 인천e음카드를 통해 급성장하게 됐다. 인천e음 발행 이래 지난달 7일 기준 가입자는 158만 명, 충전액 6조4천447억 원, 결제액 7조1천247억 원에 이르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7조 원 넘는 돈이 인천에서만 돌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성과의 주요인은 캐시백 정책이다. 현재 기준으로 자신이 충전한 금액의 10%를 돌려받을 수 있으니 시민들은 당연히 인천e음카드를 선호한다. 캐시백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이고, 충전액과 결제액의 차이가 재정 규모이다. 이렇듯 인천e음카드는 정부 재정을 바탕으로 한 변형된 지역화폐라고 볼 수 있다. 

인천연구원의 연구 결과 2019년 5~8월 동안 전년도에 비해 재정지출 대비 경제적 파급 효과가 2.9배로 나타났고 역외소비는 359억 원 감소했으며 역내소비유입 효과는 63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사기간이 짧고, 도입 초기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했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e음 카드가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막고 지역 내에서 돈이 돌게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밖에 백화점, 대형 마트, 프랜차이즈 직영점 등 제한업종을 둬 골목상권의 매출이 증가하는 효과는 물론 신용카드 대비 낮은 수수료와 QR카드 결제 시 수수료 0%는 소상공인에게 비용 절감 혜택을 주고 있다. 

이렇듯 인천의 지역화폐인 인천e음카드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지역화폐 도입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고 있으나 충전 방식인 인천e음카드는 당장 현금을 충전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에게는 오히려 재정 투입 효과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비판과 운영 대행사의 투명성 문제 등 다듬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지역화폐로서 인천e음카드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몇 가지 혁신적인 시도를 제안해 본다. 

우선 재정 투입 효과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천e음카드는 재정정책의 성격이 짙다. 올해 투입 예정인 국가 및 지방정부의 예산은 4천억 원에 달한다. 대부분의 재정이 캐시백에 투입된다는 측면에서 캐시백 포인트 사용에 유효기간을 정해 일정 유효기간이 지나면 캐시백을 감액함으로써 돈의 유통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는 화폐 유통 속도가 결국 경제가 잘 돌아가는 핵심이라는 실비오 게젤(지역화폐의 이론적 배경 제공)의 ‘가치가 감소하는 화폐 이론’에서 착안한 내용이다. 화폐의 유통속도를 높임으로써 소위 말하는 ‘돈맥경화’를 막아 지역 내에서 정부의 예산이 빠르게 돌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포인트 사용 간소화 및 충전금과 캐시백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현금 충전이 어려워 인천e음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에게는 일정 정도의 캐시를 충전해서 이들에게도 재정정책의 효과가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화폐의 지향점이자 목적 중 하나인 상호호혜를 바탕으로 한 지역공동체 복원을 위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1983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시작됐고 대전지역에서 시도됐던 한밭레츠와 같은 레츠형 지역화폐를 인천e음 플랫폼에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e음 플랫폼이 등록소 역할을 하고 일정 규모의 공동체 회원을 중심으로 실물화폐 없이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는 형태의 지역화폐가 될 것이다. 

지방자치 30년 동안 중앙권력은 지방분권을 외쳤지만 실질적으로 자치화된 내용은 전무하다. 여전히 그들은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 재정분권이 요원한 상황에서 어쩌면 지역화폐를 지키는 일은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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