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가까운 교외로의 나들이마저 쉽지 않은 요즘,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마치 지난 세기의 일처럼 까마득하다. 여행의 갈증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영화 보기는 간접적으로나마 색다른 시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잿빛 기운을 품은 뉴욕의 센트럴파크,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뒤섞여 들리는 아련한 재즈 선율 그리고 우연처럼 날아든 사랑의 감정. 이 모든 것을 담아낸 로맨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가을에 어울리는 낭만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부유층 커플인 개츠비와 애슐리는 같은 대학 캠퍼스 커플이다. 뉴욕 출신인 개츠비는 자유분방하고 잡학에 능하며 엉뚱한 가운데서도 낭만을 즐기는 청년인 반면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 중인 애슐리는 애리조나 지역 미인대회 출신답게 화창한 햇살을 닮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가득한 여성이다. 

운 좋게도 유명 영화감독을 인터뷰할 기회를 얻게 된 애슐리는 남자친구와 함께 1박 2일의 짧은 뉴욕 여행에 나선다. 본디 뉴욕 출신인 개츠비는 자신이 사랑하는 뉴욕의 이곳저곳을 애슐리와 함께 할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애슐리는 애슐리대로 감독을 만날 기대로 가득하다. 그렇게 설레는 맘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예정 시간보다 길어지고, 애슐리가 할리우드의 유명 각본가와 배우와도 만나게 되면서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는 계속해서 뒤로 밀린다. 

섭섭한 마음을 누르며 홀로 뉴욕을 거닐던 개츠비는 동창의 여동생인 챈을 만난다. 뼛속부터 뉴요커인 두 사람은 대화가 제법 잘 통했다. 그렇게 각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보낸 개츠비와 애슐리는 늦은 시간 숙소에서 재회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 특히 부모의 뜻에 맞춰 살되 끊임없이 반항을 일삼던 개츠비는 방황의 하루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위해 캠퍼스로 돌아가지 않고 뉴욕에 머무는 것을 선택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2020년 개봉한 영화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가장 핫한 청춘 스타 3인방인 티모시 샬라메, 엘르 패닝, 셀레나 고메즈는 각자의 개성과 매력으로 역할을 잘 표현했으며 그 외에도 주드 로, 레베카 홀, 윌 로저스, 리브 슈라이버 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리니치 빌리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칼라일 호텔의 칵테일바, 센트럴파크 등 뉴욕의 고풍스러운 명소들도 대거 등장해 눈을 즐겁게 한다. 이와 함께 재즈를 좋아하는 개츠비의 취향에 맞춘 재즈음악은 듣는 즐거움도 아쉬움 없이 전하고 있다.

다만, 이 영화는 개봉 당시부터 성추행으로 구설수에 오른 우디 앨런의 신작이란 점에서 평단과 대중의 반발을 산 바 있다. 그리고 앨런 감독의 전매특허인 수다스러운 대사, 뉴욕에 대한 깊은 애정, 우연이 반복되는 스토리 등으로 새로울 것 없는 재탕 영화라는 혹평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만 보자면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찬바람이 빨리 찾아든 이 가을에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보기에는 아쉬움이 없는, 낭만이 묻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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