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것은 한국 현실의 이야기가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동감을 얻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외국인들이 ‘오징어 게임’을 보다 보면 먼 나라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처지 같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빚을 갚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하는 막다른 골목길에 내몰린 사람들, 거액의 돈 버는 방법이 노동이 아닌 다양한 게임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은 흥미로웠을 것이다. ‘달고나’와 같은 게임이 유행하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호이징하는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루덴스’라 정의했다.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돈을 갚지 않으면 신체 포기 각서를 써야 하는 처지의 참가자들이 게임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황동혁 감독이 놀이하는 인간 본능의 DNA를 잘 파악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황 감독은 상대방 죽이는 일을 ‘오징어 게임’에서 놀이로 유희화(遊戱化)한다. ‘복면가왕’이나 ‘미스터트롯’, ‘내일은 국민가수’ 같은 방송 프로그램도 ‘오징어 게임’과 유사하다. 상대를 탈락시켜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게임을 하게 되는데, 무슨 게임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부부는 서로를 위로하며 한 조가 됐지만 서로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많은 방송 프로그램들이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방송 포맷을 구성하고, 거기에 시청자들은 밤늦게까지 투표에 참가해 게임의 참여자가 된다. 투표에 참가한 시청자들은 ‘오징어 게임’의 빨간색 옷을 입은 ‘ㅁㅅㅇ’들의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게 된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극단적 인물의 대조를 통해 절망적 현실을 드러낸다. 공부를 잘해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증권사 펀드매니저로 일하던 상우는 현실에서 해결할 수 없는 빚을 졌고, 같은 동네 출신 기훈은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는 비슷한 존재다. 둘은 경제적 파산을 맞아 빚을 갚고 재기하기 위해 ‘오징어 게임’에 스스로 참가했고, 최종전에서 만나 서로를 죽여야만 돈을 얻을 수 있다. 머리가 좋아 좋은 대학을 나온 놈도 별수 없다는 것을 감독은 빗대어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오면 ‘대장동 게이트’에서처럼 좋은 대학을 나온 변호사, 법조인들이 얽히고설켜 비리에 가담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고, 몸에 용 문신을 한 조폭 출신은 대통령 출마자에게 "교도소 밥맛이 좋다"며 그가 공범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종교 문제도 끌어들이고 있다. 서로 힘을 합해 데스 게임에서 살아남은 자가 자기 동료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보다는 하느님에게만 감사기도를 해 동료의 반감을 사고 있다. ‘오징어 게임’ 마지막에 기훈이 빗물에 쓰러져 있을 때 그 옆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사의 모습은 씁쓸한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종교가 힘든 사람들의 등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황 감독의 종교에 대한 시선이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자영업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빚을 얻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고, 젊은 밀레니엄 세대들은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자하면서도 적은 임금으로 살아간다. 희망 없는 현실은 결혼해 아이를 낳을 생각을 접게 만든다. 그러니 출산율은 OECD 최저를 보여 주며 국가의 미래는 위태롭다. 힘 있는 국회의원, 법조인들은 대장동 게이트에 빨대를 꼽고 50억 원씩 빨아 먹는다. 이러한 불법과 불평등이 멈추지 않는 한 공동체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같은 배경에 비현실적 세트 구성을 했음에도 ‘오징어 게임’이 인기를 누리는 것은 세계 곳곳에 ‘오징어 게임’ 현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리라. 칼 폴라니의 말처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탄의 맷돌’을 우리 스스로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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