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불행은 두 개의 큰 축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구성원 간의 갈등이다. 생각이나 성격 차이 등 사사건건 서로의 언행을 불쾌하게 느껴 발생하는 갈등이 있다. 어느 집에서나 겪는 일이지만 이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어느 정도 봉합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해가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가정의 화목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다른 한 축은 사회의 시선에서 발생한다. 외부의 시선이 편견에 싸여 있을 때, 이를테면 공동체가 지향하는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삶의 모습을 보일 때 경멸에 찬 차가운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2002년에 개봉한 영화 ‘파 프롬 헤븐’은 시선의 폭력으로 천국에서 멀어진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비추는 작품이다.

1957년 미국 코네티컷 하트포드. 가정주부 캐시는 마을 잡지에 모범 여성으로 소개될 만큼 평판이 좋은 사람이다. 건실한 사업가인 남편과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는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챙겨 사무실로 향한 캐시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접하게 된다. 남편의 동성애적 성향을 목격한 캐시는 혼란스러웠지만 그런 성적 취향은 질병이라 판단해 정신과 치료를 권유한다. 남편 또한 가정과 사회적 위치를 지키기 위해 치료에 동의하지만 호전되지는 않는다. 캐시는 자신의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홀로 괴로워한다. 

이런 그녀를 말 없이 위로해 준 이는 정원사 레이몬드였다. 다정한 레이몬드의 태도는 캐시에게 힘이 됐고, 그렇게 두 사람은 정서적으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웃들은 이 모습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캐시와 레이몬드의 친근함은 저열한 불륜으로 비칠 뿐이었다.악의적인 소문과 시선의 폭력은 레이몬드가 흑인이었기에 더욱 가속화됐다. 이런 와중에 남편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해 이혼해 줄 것을 요구하고, 레이몬드는 마을의 편견 어린 시선이 생계와 생명마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자 타 지역으로의 이사를 결정한다. 그렇게 캐시는 두 사람의 선택을 모두 존중하며 홀로 서기를 시작한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파 프롬 헤븐’은 고전적인 멜로 형식을 빌려 당시 영화들은 말하지 못했던 동성애와 인종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물론 개봉 당시인 2002년은 1950년대보다는 한층 나아간 시점으로 해당 이슈를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의 폭력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는 50년 동안 별반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지속하고 있음을 영화는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시선의 폭력이란 마을공동체가 규정한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자에게 가하는 암묵적인 차별과 냉소를 뜻한다.

영화 ‘파 프롬 헤븐’은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천국과 멀어진 삶을 살게 되는 캐시를 비추지만, 우리는 영화 제목인 천국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본성을 숨기고 차별이 만연한 세상을 천국이라 부른다면 캐시는 허울뿐인 천국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통해 비록 고통은 피할 수 없겠지만 진실한 삶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