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황정은 / 창비 / 1만2천600원

이름만으로 독자를 설레게 하는 작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 황정은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 출간됐다. 작가는 만해문학상 수상 소감(2019년)에서 "소설을 쓰기 위해 메일 답신을 쓰는 데 사용하는 문장도 아껴야 한다"고 밝힐 정도로 소설 외의 글을 발표하는 일이 드물었다.

 이 책의 첫 장인 ‘일기日記’와 그 다음 장인 ‘일년一年’은 파주로 이사한 작가의 일상에 코로나19가 들어오면서 생겨난 이야기다. 원고노동자로서 몸을 관리하는 법, 동거인을 마중 나가는 길 등 많은 것이 달라진 이후 작가는 집 앞 공터인 ‘반달터’를 지켜보는 일이 잦아졌다. 계절이 바뀌며 반달터는 식물이 자라는 농장으로, 아이들이 눈을 굴리는 놀이터로 그 역할을 달리해 간다. 반달터의 일 년을 바라보는 일은 우주를 상상하는 일로 이어지는데, 그 거대한 시간 앞에서 작가는 ‘명命을 지닌 존재들’의 안녕을 빈다.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과 ‘민요상 책꽂이’에는 작가의 어린 조카들이 등장한다. 이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에서 작가의 ‘최애’ 애니메이션인 ‘빨강머리 앤’에 대한 사랑이 학대당하는 어린이에 대한 서늘한 이야기로 반전되는 것과 겹쳐지며 독자의 가슴을 때린다.

 황정은은 세월호에 관한 발언을 꾸준히 이어온 작가로 유명한데, ‘목포행木浦行’은 2017년 이후 매년 목포신항을 방문하는 작가의 이야기다. 세월호는 황정은에게 무엇이고,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주장이나 웅변 없이 작가의 경험으로 들려준다. ‘산보’는 작가가 돌보는 화분들과 걷기에 관한 이야기다. 원고를 쓰기 위해 필요한 몸과 마음은 어떻게 단련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황정은은 어떤 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독자에게 특히 반가운 장이다.

 작가는 이 책을 묶으며 "쿠키를 먹는 것처럼 읽을 수 있는 일기를 목적하고 썼다"고 밝혔다. ‘쿠키 일기’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장은 그 생각을 갖게 된 이유에 관한 글이다. 중간에는 작가가 ‘추천사’를 쓰지 않는 이유와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등장하는데, 황정은의 팬덤이 품고 있던 오랜 비밀 한 가지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고사리를 말리려고’와 ‘흔痕’에는 작가의 과거가 담겨 있다. 오래전 작가가 겪은 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면서도 그 안에서 위로와 감동이 탄생하는 기이한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우리 궁궐 이야기

구완회 / 상상출판 / 1만4천400원

가족끼리 궁궐에 간다면 꼭 읽어야 할 부모용 역사 참고서가 출간됐다. 궁궐 안내판을 쉽고 자세히 설명해 주는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책이자 궁궐 건물에 얽힌 궁금한 이야기와 알고 보면 더 재미난 뒷이야기를 실었다.

궁궐 안내판은 정보를 집약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또 법궁, 정전, 행각, 금천, 내전, 외전처럼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한자어와 옛말이 가득하다. 이런 안내판을 아이와 함께 읽어 보다 잘 모르는 내용에 당황한 경험이 어느 부모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부모가 궁궐 안내판의 내용을 먼저 이해한 후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단순히 궁궐 여행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다. 궁궐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보는 이야기책이며 부모용 역사 참고서라 할 만하다. 안내판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물마다 얽혀 있는 역사적 사건은 물론 관련 인물, 건축 방식, 조선시대 왕실의 모습과 궁중 생활상, 일제강점기의 아픔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선보인다. 이는 비단 아이를 가르치려는 부모뿐만 아니라 역사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읽어 보기에도 좋다.

외교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임한택 / 렛츠북 / 1만1천700원

이 책은 저자가 34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며 마주한 한국 외교의 실재를 담았다. 대한민국 외교의 길을 묻고자, 또 알리고자 출간했다. ‘평화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힘의 전쟁, 외교’ 등 북핵 문제, 한일 문제, 미·중 갈등은 귀에 익도록 들어온 외교 뉴스지만, 정작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외교가 중요하다"고는 말하지만 외교의 내용과 실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책은 화려하게만 보이는 외교의 민낯을 드러내며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한국 외교의 현 위치를 짚어 낸다. 또한 국제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북한에 관해, 미·중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국에 관해, 오래 묵은 반일 감정 등에 관해 국민이 알고 취해야 하는 외교적 태도를 제시한다.

이제 국민은 외교가 일상과 동떨어진 뉴스가 아니라 실재하는 힘의 전쟁임을 알아야 한다. 외교를 제대로 알고 힘을 키워야만 ‘한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뜻을 헤아려 보는 건 어떨까.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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