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국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백승국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역대 흥행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단 28일 동안 1억4천200만 명이 아홉 편짜리 시리즈를 감상하면서 94개국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2020년 8천200만을 기록했던 영국 드라마 ‘브리저튼’을 넘어서는 신기록이다. 세계 문화콘텐츠산업 7위인 한국형 콘텐츠가 3위인 영국 콘텐츠를 압도하는 문화코드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한편, 한국형 콘텐츠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 악의적 질투를 하는 유럽과 일본의 비평가도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오징어 게임’의 폭력적 장면만을 부각하면서 청소년의 모방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혹평을 한다. 또한 황동혁 감독의 시나리오 구조가 다른 작품과 유사하다는 표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 오징어당이 창당되고, 야권의 경선 후보 토론장에도 ‘오징어 게임’이 등장했다. 한 야권 대선 후보가 상대 후보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비리 후보로 한국 대선이 ‘오징어 게임’ 같다고 비유한 것이다. 외신 보도를 명분으로 경쟁 후보의 도덕적 결함을 노출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수사학적 의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한 명만이 살아남는 대선 후보 토론장은 살벌한 분위기의 ‘오징어 게임’처럼 보인다. 

2021년 여야 후보들의 경선 토론은 말 잔치의 ‘언어게임’으로 오염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갈라진 진영 논리의 정치적 담론만이 판을 치는 가식의 ‘언어게임’ 장이다. 대선 후보들에게 주어진 생존 아이템은 정치적 언어이다. 정치적 언어는 문장 전후의 맥락적 의미와 진정성은 중요하지 않다. 대선 후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좌우로 갈라선 진영의 독트린과 정치적 담론을 유권자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소통 전략뿐이다. 

어쩌다 잘못 선택한 상대 후보의 말실수는 무차별 비판으로 연결되고 확대재생산된다. 그 순간 정치적 프레임을 독점하기 위한 상대 후보의 말실수를 이슈화하는 퀴즈 형식의 ‘언어게임’ 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대선 후보의 과거 비리와 부도덕한 언행을 검증하는 진위 문제는 사라지고, 본질을 호도하는 거짓이 사실로 둔갑하는 ‘언어게임’ 장으로 오염되는 것이다.

반면에 ‘오징어 게임’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실주의 작품이다. 드라마에 비친 한국 사회는 빚을 조장하는 가계 부채가 높은 부조리 사회로 묘사되고 있다. 자동차 공장에 다니던 주인공 성기훈은 일자리를 잃고, 은행과 사채에서 빚을 얻어 자영업자가 되지만 모두 실패한다. 실제로 기업 도산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한 자영업자의 몰락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97.9%로, 1천843조 원이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인공의 깐부 조상우는 쌍문동 천재로 서울대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한국 사회의 성공 모델을 보여 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하지만 선물거래로 60억 원의 빚을 지고 추락하는 중산층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몰락하고 부의 양극화는 극대화되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은 61%로 OECD 평균 수준이고, 그 중 15%가 과도한 채무에 허덕이고 있다. 빚은 중산층의 몰락뿐만 아니라 불평등 사회를 가속화하는 지표이다. 또한 연금 사각지대와 노후 불안정에 내몰린 실버세대의 빈곤율도 50%를 넘어서고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선 후보 토론을 관전하는 서민들은 가식과 말 잔치의 ‘언어게임’보다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그릴 수 있는 비전 제시를 원한다. 부조리가 판치는 불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면 부채가 줄고 내 집도 마련할 수 있다는 섬세한 정책 토론을 원하고 있다. 진실과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 가는 섬세한 정책만이 ‘오징어 게임’의 디스토피아 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마법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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