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 변호사
한재웅 변호사

어릴 적 경북 고령에 있는 외삼촌댁에서 방학을 보내곤 했다. 추위나 더위가 기승이면 밖에서 놀지 못하고 꼼짝 없이 사촌형과 단출한 작은 방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그럴 때면 사촌형은 작은 스피커 두 개가 달린 라디오에서 잡음이 나오지 않게 천천히 주파수 돌려 FM을 틀어 두었다. 사촌형이 주파수를 맞추는 것보다 더 신경을 썼던 것은 본인이 원하는 정도로 볼륨을 맞추는 일이다. 사촌형은 매번 신중하게 원하는 볼륨을 찾았다. 사촌형이 원하는 볼륨은 소리가 바닥에 깔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낮았지만 말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다른 일을 하면 소리가 잊혀질 정도였기 때문에 큰 볼륨보다 오히려 더 음악에 집중하며 듣게 됐다. 

어린아이가 좋아할 만한 놀이는 아니었지만 원래 소리가 크게 나오지도 않는 작은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씩 더 줄여가며 맞추는 것이 꽤 멋있게 느껴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촌형과 라디오를 듣곤 했다. 그때 FM에서 나왔던 음악들은 지금도 많은 곡들이 생각날 정도로 인상 깊었고, 이후 음악적 취향을 결정했다고 할 정도로 나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천에 있는 집에 돌아와서도 사촌형을 흉내내 본 적이 있지만 형처럼 차분한 성격도 아니고 집에는 게임이나 컴퓨터 같이 놀 거리도 많아 집에서는 그런 모습이 재현되지 못했다. 

성인이 돼서는 오디오에 취미가 생겨 큰 스피커와 엠프를 마련했다. 그러나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게 쉽지 않다. 스포츠카를 도심에서만 모는 것처럼 좋은 스피커를 큰 소리로 듣지 못 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가끔 큰 맘 먹고 볼륨을 높여 보지만 결국 마음이 불편해져 오래 듣지 못한다. 나중에 더 좋은 집에 살면서 마음껏 듣고 싶다거나 차라리 다 처분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잡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오디오를 틀 때도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소리를 듣는 느낌으로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작은 라디오로 듣던 때가 더 음악에 집중했고 더 깊이 감흥을 받았던 것 같다. 

불꽃같은 삶도 멋지지만 때로는 젖은 짚단을 태우는 듯 고요한 인생이 더 깊은 여운을 주기도 하는 것처럼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려고 할 때 보다 차분하게 말할 때 메시지 내용이 더 잘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정보나 각종 주장들이 과잉된 현대사회의 경우에는 정보나 주장이 서로 경쟁을 하다 보니 전부 목소리만 커지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게 되는데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진지하고 차분하게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려는 태도가 더 빛나 보이고 결국은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완연한 대선정국으로 각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후보들의 공방으로 언론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가 가득 채워지고 있다. 경쟁이 격화될수록 서로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데, 문제는 서로 목소리를 높일수록 자극적으로 상대를 비방하는데 치중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여러 사람이 크고 강하게만 주장하려고 하면 듣는 사람은 메시지에 집중하기 어렵고, 화자(話者)는 내용 자체보다는 짧은 시간에 인상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인 표현이나 비방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 대선구도에 있어서 주요한 공방은 모두 "대장동", "고발사주" 등 굵직한 비위 의혹이 있다. 또, 후보들의 정책 내용보다는 실언이 더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더 좋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보다 덜 나쁜 사람을 골라야 하는 것인지 유권자로서 처량한 생각까지 든다.

때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후보들은 오히려 볼륨을 낮추면 어떨까? 볼륨을 낮추고 차분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비전을 전달하면 유권자들이 더 경청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결국에는 유권자들이 더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 경쟁하는 상대방만 보지 말고 유권자의 입장으로 판단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가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나는 지금 큰 볼륨으로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유권자들이 듣기 편한 볼륨을 찾아낸 후보를 기대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