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한 대를 구성하는 부품 수는 3만여 개에 달한다. 특히 나사못 하나까지 원청이 요구하는 일정 품질 수준에 도달해야 이들 부품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하나의 자동차로 완성된다.

 자동차산업은 3만여 개의 부품 중 단 한 개라도 공급이 중단되거나 하자가 발생할 경우 모든 생산라인을 멈춰야 할 만큼 현대 정밀기술과 설계공법의 정수로 꼽힌다.

 지난해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서 보고된 우리나라 자동차부품산업 현황을 보면 자동차회사와 직접 거래하고 있는 1차 협력업체의 수는 744곳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해마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 이유로 자동차 조립 업체와 부품 업체 간 종속적인 관계로 인한 문제도 있지만, 부품 생산을 위탁하는 업체가 요구하는 단순한 생산 및 조립에만 의존함으로써 생기는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 부재나 일원화된 영업망 의존 또한 원인으로 꼽는다.

 이처럼 중소 자동차부품업체의 불황 속에서도 우수한 기술력과 생산력으로 안정적인 영업을 지속하는 경기도 여성기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 

 화성시에 위치한 자동차부품회사 ‘㈜나진’은 엔진 부품으로 쓰이는 워터펌프 임펠러를 주력 사업으로 하며 각광을 받고 있다. 

나진 건물 전경.
나진 건물 전경.

# 지금을 있게 한 효자 제품 임펠러

자동차 엔진은 연료를 투입해 흡입-압축-폭발-배기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기계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장치이다. 이 과정에서 연료가 연소될 때 발생하는 열에너지로 인해 쉽게 가열되기 마련인데, 과열된 엔진을 지속해서 식혀 주지 못한다면 엔진이 녹아 동작이 멈추거나 화재로 인해 운전자의 안전과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된다.

따라서 엔진을 적정 온도로 유지시키기 위한 장비로 ‘워터펌프’가 사용된다. 엔진에 붙어 있는 워터펌프는 냉각수가 흐르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엔진이 일정 온도 이상 과열되지 않도록 식혀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때 파이프라인 속 냉각수를 끊임없이 흐르도록 하는 장치가 바로 ‘임펠러’다.

임펠러는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며 냉각수를 계속해서 순환시켜 엔진이 과열되지 않도록 하는 자동차의 핵심 장치다. 만일 임펠러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냉각수가 일정하게 흐르지 못해 엔진 기능 고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엔진만큼이나 핵심적인 부품에 속한다.

나진은 1988년부터 자동차부품업계에 뛰어들어 30년 이상 원청의 신뢰를 받으며 성장해 왔다. 특히 임펠러 생산에 있어서는 대량의 생산시설 설비를 갖춘 최대의 부품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설립 초기 제품을 만들어 내는 프레스기기가 1대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400t 프레스기기 2대를 비롯해 80t과 35t 프레스기기까지 구비하면서 원청의 요구 조건에 맞는 다양한 제품들을 적기에 생산, 협력업체의 적시생산시스템(Just-In-Time)을 실현하고 있다.

프레스 기기를 갖춘 공장 내부.
프레스 기기를 갖춘 공장 내부.

#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 온 경기도 여성기업 나진

대부분의 중소 하청업체가 혁신 역량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나진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미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현재까지 나진의 제품 대부분은 ‘프레스’식 금형으로 생산돼 왔다. 프레스식의 경우 철판을 찍어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반면 원하는 모양으로 다양하게 구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나진은 고심 끝에 2016년부터 사출식 금형으로 탈출구를 모색했다. 이후 5년간의 연구와 준비 과정을 마쳤고, 특허 취득과 함께 내년 양산을 앞두고 있다. 나진이 사출식 금형을 통해 생산해 내는 새로운 임펠러 제품은 기존 대비 15% 이상의 효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진은 대부분의 자동차부품 중소 하청업체가 문을 닫는 이유로 꼽히는 영업망 다변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판로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경쟁력을 갖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조된 나진의 제품은 다양한 기업에서 제조하는 중간재 제품으로 쓰이고 있고, 이러한 중간재 제품이 멕시코·미국·인도·유럽 등 다양한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있어 나진의 입장에서는 특정 원청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계기가 되고 있다.

#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

과거에는 거칠고 험한 자동차부품업계에서 여성이 기업을 이끌어 간다는 것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보이지 않았다. 2013년부터 가업을 물려받아 지금의 나진을 이끌고 있는 김은영 대표 역시 편견에 가득 찬 시선을 이겨 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펼쳐 왔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년 이상 이어오던 거래처들이 돌연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거나 일의 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며 원청을 설득했다. 이후 김 대표의 진심과 전문성을 알게 된 원청들이 오히려 사과의 뜻을 밝히며 신의의 관계가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나진에서 자체 제작한 임펠러 제품.
나진에서 자체 제작한 임펠러 제품.

최근 나진은 임펠러를 비롯해 ‘브래킷’과 같은 프레스식 부품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겠다는 포부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서는 높은 시장점유율을 올리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의 점유율이 높아지며 전자제품 시장에서 활약하던 업체들이 자동차부품으로도 사업을 확장하다 보니 다시 자구적인 경쟁력을 높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 특성상 엔진의 설계구조 변경에 따라 새로운 요구 조건의 신제품 개발과 양산은 필수적인 상황으로, 최근 타 업체들이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던 원청의 신제품 제조 요청을 과감히 수용하면서 ‘3차원(3D) 임펠러’나 ‘감마2 임펠러’와 같은 신제품을 출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나진은 향후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에도 힘을 기울여 제품 경쟁력은 물론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 김은영 (주)나진 대표 인터뷰

-‘나진’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게 400t, 200t, 80t 등의 기계 프레스와 사출기 등이 가동되고 있어 타 업체보다 빠른 시간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빠르게 변화해 가는 자동차부품시장에 맞게 사출 임펠라를 자체 제작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부터 진행했던 3차원 임펠라도 자체 제작해 테스트까지 끝난 상태이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해 유통할 계획이다.

-경영상 어려웠던 점은.

▶경직된 분위기인 자동차업계에선 여성 대표를 향한 선입견이 있어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무를 추진해 오다 보니 거래처에서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고 현재까지 오랜 시간 연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발전해 나가고 싶다. 특히 전기차 시장이 많이 발전하는 만큼 전기차부품 분야에서도 뒤처지지 않도록 신제품 연구와 제품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는 만큼 시련이 와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버티며 넓게 앞으로 나아가는 나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