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지난 10월 10일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우창에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이 세워진 신해혁명의 시작일로, 타이완에서는 국경일이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의미 있는 기념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신해혁명 110주년 대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쑨원 혁명사업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가장 충성스러운 협력자이자 후계자들"이라며 신해혁명의 위대한 정신과 쑨원의 발자취 및 포부를 이어받겠다고 다짐했다.

중중인(본토나 타이완은 물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에게 쌍십절은 건국일보다 더 의미 있는 날이자 길이 빛내야 하는 기념일로 깊이 각인돼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신해혁명으로 탄생한 중화민국의 건국일은 1912년 1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일은 194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마오쩌둥이 개국을 선포한 시점으로 잡고 있는 만큼 쌍십절과 직접 관계가 없다. 따라서 쌍십절 기념행사는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가 세계 도처에 함께 나부끼는 축제나 다름없이 그동안 진행돼 왔다. 예를 들어 홍콩에서 10일 되면 친타이완 단체들의 경우 청천백일기를 내걸고 축제를 즐겼으며, 화교들 사회에서도 청천백일기나 오성홍기가 함께 나부끼며 갖가지 축하 행사나 쑨원을 추모하는 일이 빈번했다. 중국과 타이완의 갈등보다 쑨원의 포부와 이상이 더 높은 곳에 자리잡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올해는 많이 달라졌다. 홍콩의 경우 지난해부터 바뀌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홍콩 공산공원 내 청산홍루에서 진행돼 온 청천백일기 게양식이 이뤄지지 못했고, 모여든 시민들이 쫓겨나다시피 떠나야 했다. 처음부터 보안요원이 현장에 바리케이드와 경계선을 설치하고 시민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면서 "쌍십절에 중국과 타이완을 분리시키는 행동이나 타인을 선동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 단호하게 법 집행을 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으면서 나타난 결과이지만 이는 ‘일국양제’를 타이완에 보여 주려 했던 중국이 홍콩의 지배를 확고히 하고 양안 관계가 격화되면서 타이완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제 홍콩을 본보기로 이용할 필요도 없고, 여타 국가의 화교사회에 대해서도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홍콩의 렁춘임 전 행정장관의 행보를 보면 그렇다. 친중국 운동가들이 주최한 신해혁명 110주념 기념식에 참가해 "홍콩과 국내외 젊은이들이 신해혁명 선배들의 유지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물론 엄정한 법 집행을 운운하면서 쌍십절을 기념하는 친타이완 행사를 억누르는 데 대해 일언반구도 안 했다. 결과적으로 신해혁명의 기념이 오성홍기 아래서만 된다는 공산당의 방식만 통하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오성홍기가 게양될 때 애국가를 부르게 하는 등 애국주의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현상도 도외시할 수 없다. 중국 민족주의의 대두가 초래하는 후유증은 역사적으로 간단치가 않기 때문이다. 통일된 중국, 대륙이 한 체제 속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사방을 향해 힘을 과시했고, 거의 일반화된 세력 확대 정책으로 인접국을 침범해 국경선을 넓히려고 해 왔다. 

"건물의 외벽이나 실내는 물론 온갖 구석구석까지 크고 작은 오성홍기로 가득 채워졌다. 마치 깃발 속에 내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쌍십절에 홍콩을 방문했던 한 화교의 경험담이다. 

신해혁명의 출발일을 기념하는 이런 모습은 매우 상징적이다. 원래 쌍십절은 중국사에서 매우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어느 일방의 세 과시로 청천백일기든 오성홍기든 고집하는 게 쌍십절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양안 관계가 보다 긴장하고 있으며 격화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뿐 아닌가.

동북아시아 각국의 역사는 그 배경이나 진행 과정에 얽혀 있는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1900년대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사건에서는 더욱 꼬이다시피 얽혀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도 신해혁명과 연관된 여러 유산이 있고, 오늘에도 양국 깃발을 둘러싼 묘한 광경이 노출된다. 베이징 쪽에서 유연한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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