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목 PEN리더십연구소 대표
홍순목 PEN리더십연구소 대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어떤 목적지가 있고 또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생뚱맞은 질문일지 모른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질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애초에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일부러 회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는 순간 순간 갈림길에 놓여 있고 어떤 형태로든 선택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현 상황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미래비전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후보자 간의 토론회가 아닐까 싶다.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중계되는 토론회에서는 국방, 외교, 경제, 복지, 환경 등을 주제로 토론을 펼치게 된다. 후보자 나름대로 통계와 전문가의 식견을 참조해 자신만의 비전을 제시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와 입장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며칠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을 끝으로 지난 몇 달 동안 이어온 여야 정당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토론회 일정도 마무리됐다.  토론회를 지켜본 국민들이나 정치평론가들의 평가는 좋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문제보다는 후보 개인의 흠집 잡기 정도의 토론과 이에 대한 해명이 주를 이뤘다. 당장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겠지만 토론회를 마치고 나면 남는 것은 없다. 토론회에서 오간 내용은 대부분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뤄졌던 것이 대부분이다. 지역별로 순회하면서 각 후보마다 쏟아내는 지역 발전 공약이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 속에서 어떤 역할로 어떻게 조화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각 후보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적임자가 본인 스스로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후보자 본인이 과연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후보자마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통찰과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숙고가 부재함을 느끼게 된 토론회였다.

우리 사회에 생각이 있는가? 아주 오래전 미국 타임지가 표지기사를 통해 "아시아인들은 생각할 줄을 모른다"고 했다. 아시아인들에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이를 전통적인 권위 혹은 책에서 찾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에 대한민국 사회도 아니라고 답하지 못한다. 역대 정권을 보면 대통령이 경제에 관련한 책 한 권을 읽고 그 저자를 중요한 정책 결정자로 임명한 경우가 있었고, 원전사고 관련 영화를 보고 탈원전을 지시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숙고와 토론 없이 답을 정해 놓고 정책을 실행한 지난 사례가 성공으로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권위가 중시되고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지 않는 사회야말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만났다고 해서 북핵 문제가 바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허위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한일관계를 감정적인 대응만으로는 끌고 가려는 시도, 전통적인 우방 미국과 경제파트너 중국 사이에서의 대한민국 외교는 단선적인 사고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규제에 규제를 더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폭등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는 단순히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즉, 숙고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 여느 사람들과 같이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서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속도의 중요성에 빠져 있다. 각 분야에서 이뤄지는 속도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돌아볼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잠시 멈춰 서 방향을 가늠해 보는 것은 어떤가. 출발점에서의 작은 차이가 도착지에서는 엄청난 차이로 나타나지 않는가.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라는 책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의 "눈앞에 닥친 급한 것과 소중한 것을 구분하라"는 조언도 같은 맥락이다. 멈춤과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을 통해, 숙고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에 진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구분해 내야 한다. 급한 것에 쏠렸던 관심을 소중한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 즉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한때 슬로 라이프가 관심을 끌 때가 있었다. 빨리빨리 대한민국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개인적 생활 패턴을 바꿔 보자는 이 슬로 라이프를 생각해 보면서 슬로 정치는 어떨까 하는 필자의 생각이 엉뚱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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