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11월 11일은 제26회 농업인의날이다. 농업인의날은 농업이 국민 경제의 바탕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자부심을 키우며 그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종전의 ‘어민의 날’, ‘목초의 날’을 통합한 ‘권농의 날’이 ‘농어업인의 날’로 바뀌었다가 ‘농업인의날’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일상생활에서나 법령에서나 공히 ‘농민’이란 용어를 사용했었는데, 정부(농림부)가 농업 관련 법령 안에 들어 있는 ‘농민’이란 용어를 ‘농업인’이란 용어로 바꿨다.

예컨대 1994년 농업협동조합법 개정 시 제22조에 규정된 ‘농민’이란 용어를 ‘농업인’으로 바꿨다(법률 제4819호, 1994. 12. 22, 일부개정). 그렇지만 헌법에서는 제헌헌법(제86조) 이래 지금까지 줄곧 ‘농민’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헌법 제123조 제4항은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5항은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에서 ‘농민’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보다 하위 규범인 법령(법률·명령)에서 ‘농민’이란 용어를 구태여 ‘농업인’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이러한 변경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충분한 의견 수렴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농업인’의 범위도 법령마다 다르다. 예를 들면 농업협동조합법에서 정하는 농업인의 범위(농업협동조합법시행령 제4조 참조)와 농지법에서 정하는 농업인의 범위(농지법시행령 제3조 참조)가 다르다. 물론 각 법마다 입법 취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농업인의 범위를 법령에서 일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든 ‘농업인’이란 용어는 종래에 없던 용어를 정부가 법령으로 창안해 낸 것이다. 처음엔 매우 생경스럽게 여겨졌는데, 정부가 자주 사용하다 보니 국민들 귀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런데 3월 17일은 ‘상공의날’, 4월 21일은 ‘과학의날’, 5월 31일은 ‘바다의날’인 점에 비추어 보면 왜 ‘농업인의날’에만 ‘인(人)’이란 단어를 추가했는지 궁금하다. 가령 ‘농업의 날’이라고 했다면 ‘농업’이란 ‘산업’을 위주로 인식되겠지만, ‘농업인의날’이라고 했기 때문에 ‘농업인’이라는 ‘사람(자연인)’을 위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농업’은 국민들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매우 중요한 생명산업이다.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상 국민들이 배고픔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살게 된 것은 불과 몇십 년밖에 안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기아(飢餓)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아직도 아프리카 등 여러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경험하고 있다. 더욱이 평화 시기에는 식량 수급의 절실함을 잘 못 느끼지만 국제 정세가 긴장되면 ‘식량 안보’야말로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된다. 따라서 평상시에 식량 수급 안정성을 크게 유념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국민이 먹을 식량의 75%를 해외에서 사 와야 하는 현실은 위태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급변하는 가운데 농업도 크게 바뀌고 있다. 바이오농업·스마트농업 등 농업이란 산업 자체가 크게 확장·진화하고 있고, 농업을 미래의 각광받는 산업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 농업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고급의 과학기술인력이 투입돼야 하고, 기업 등 법인의 참여도 활성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각종 진입 규제 등도 완화돼야 한다. 증여나 상속제도도 농업을 계승·영위하는 데 제약이 되지 않도록 정비해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고질적 병폐인 농산물 가격 불안정을 해소하려면 도매시장이 농업인 개인 단위로 농산물을 출하하도록 권장하는 종래의 행태를 지양하고, 선진국처럼 협동조합이나 공동출하조직을 통한 출하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농업 발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관련 인프라 확충과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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