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박물관은 여주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일파 엄항섭 선생과 선생의 동생 엄홍섭, 부인 연미당, 딸 엄기선의 독립운동과 고향 여주와의 역사적 관련성을 다룬 학술총서를 발간했다.

24일 여주박물관에 따르면 일파 엄항섭은 여주시 금사면 주록리에서 태어나 여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서울 보성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투신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 임시헌법 기초위원·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맡으며 임시정부를 지켜 내고 독립투쟁에 앞장섰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의 최측근으로서 임시정부의 주요 활동에 많은 관여를 한 임시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다.

엄항섭 선생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호하고 독립 투쟁에 앞장섰다. 동생 엄홍섭은 형과 함께 임시정부의 최일선을 지켰다. 엄홍섭은 1927년 중국으로 건너가 청년 독립운동가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서 선전 활동을 담당하던 그는 이후 임시정부 선전위원회와 선전부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광복군에서 미국과의 군사 공조 임무를 수행했다.

항일의식이 투철한 집안에서 태어난 연미당은 1927년 엄항섭과 결혼한 후 한인여자청년동맹 창립에 참여하는 등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임시정부 여성단체 결성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가족들을 살뜰히 챙겨 나갔다. 엄항섭과 엄홍섭 그리고 연미당은 임시정부 1세대와 청년세대를 잇는 가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듯 엄항섭 일가는 독립운동에 매진했지만 공(功)에 비해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그의 독립운동을 다룬 저작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이며, 때론 납북 독립운동가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곤 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된 엄항섭은 자주적 민족통일을 주장하다가 북에서 고초를 겪었으며, 1962년 끝내 숨을 거뒀다. 동생 엄홍섭은 전쟁 중 행방불명돼 생사조차 모르고, 이제껏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지도 않았다.

여주박물관은 2020년 독립운동가로서 엄항섭을 재조명하기 위해 국민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일파 엄항섭의 독립운동과 여주’라는 학술조사를 진행, 엄항섭 선생의 독립운동과 여주와의 관련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 조사를 통해 엄항섭 선생 및 엄홍섭·연미당·엄기선의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으며, 엄항섭 선생의 아들인 엄기남 선생의 구술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엄항섭 일가의 독립운동과 여주」는 학술조사의 결과를 학계와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여주박물관 학술총서로 발간됐으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엄항섭 일가의 독립운동을 널리 알릴 계기가 될 전망이다.

여주=안기주 기자 ankiju@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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