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수능이 끝날 시간에 안과 가려고 택시 탔더니 라디오에서 퀴즈가 나온다. 수능 마친 아이는 무엇을 먹고 싶을지 묻는데, 짜장면? 예전이라면 몰라도 요즘 고등학생이 짜장면을 찾을 리 없단다. 탕수육도 아니란다. 치킨으로 정정한 진행자는 수능 종료 전 주문하라고 조언한다. 너나 없이 주문할 테니 한두 시간 기다리는 건 보통이란다. 집안에 수능 치를 아이가 없어 관심이 없었는데, 안과에서 나오니 도로가 답답하게 막혔다. 어디나 마찬가지라는데, 수능 마친 학생은 치킨집을 찾았을까? 

치킨 가격이 오른다는 뉴스가 나온다. 인기가 큰 프랜차이즈 회사부터 올렸지만 머잖아 덩달아 상승할 거라 예견하는 언론은 한 마리에 2만 원이 넘을 거라 진단한다. 배달요금까지 더하면 부담이 크겠다. 코로나19가 더 진정되고 ‘단계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치맥 찾는 주당들이 흐느적거릴 테니 자영업자들의 숨통이 트일까? 알 수 없는데, 치킨값은 떨어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원유 가격과 연동하기 때문이다. 기름 원료인 수입 콩의 가격 인상을 이유로 분석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대규모로 재배하는 콩은 파종에서 생산, 수확, 수송, 저장에 이르기까지 석유 없이 불가능하다. 콩만이 아니다. 

맛이 얼마나 빼어나기에 치맥이 옥스퍼드 대사전에 새롭게 등재된 걸까? 외국 프라이드치킨을 먹어 본 적 없는데, 맵고 달콤하며 짭조름한 양념 덕분일까? 유튜브 카메라 앞에서 엄지를 드는 외국인들은 바삭한 튀김옷 안의 육질이 부드럽다고 감탄한다. 분명한 것은 치맥 재료인 우리 닭은 외국보다 어리다는 사실이다. 삼계탕 뚝배기에 들어가는 닭은 더 어리다. 고등학교 졸업식 마치고 짜장면 먹은 중년들이 기억하는 백숙의 쫄깃함은 치맥과 삼계탕에 없다. 닭갈비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이전, 할머니 손잡고 찾은 석바위시장은 손님 보는 앞에서 살아있는 닭을 잡았다. 끓는 물에 넣고 털을 뽑아 포장해 줬지만, 언제부터인가? 비위생적이라며 냉장한 닭을 일률적으로 판다. 닭을 사는 소비자도 요즘은 거의 없다. 치맥이 대세로 바뀌었다. 사위 오면 잡던 씨암탉은 옛이야기일 따름인데, 요즘 닭은 닭이 아니다. 차라리 석유다. 도살되기 전까지 먹이는 사료가 대부분 석유 없이 재배할 수 없는 옥수수와 콩인 까닭이다. 그런 곡물에서 얻는 열량의 10배 이상의 석유를 동원해야 예측한 수확이 가능하고, 가공한 사료를 정해진 시간에 적량 먹여야 도살 직전까지 양계장 모든 닭의 크기가 똑같아진다. 

시장 상인의 손이 아니라 거대한 자본이 한꺼번에 처리하는 닭은 똑같아야 한다. 하루 100만 마리 이상 처리하는 기계의 오차범위 밖으로 들쭉날쭉한 닭을 납품하면 그 양계장은 망한다. 값비싼 정밀 기계가 망가지지 않나. 그를 위해 축산과학이 진작 연구했고, 닭은 타고난 유전자를 읽고 극단적으로 단순화했다. 엄격한 사육조건을 지켜야 무게와 크기가 똑같으니 기계 고장이 없다. 오리도 메추리도 마찬가지다. 돼지도 소도 비슷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멧돼지는 대개 견뎌 내지만 대형 축사의 돼지는 어림없는 이유가 그렇다. 

곡물에 의존하는 돼지와 소도 석유다. 돼지는 닭의 2배, 소는 3배의 석유가 필요하다. 우유와 달걀도 비슷한데, 석유 고갈이 멀지 않았다. 산유국이 자료를 한사코 감추지만, 관련 학자는 2005년 전후 생산보다 소비량이 늘기 시작했다고 증언한다. 비축량이 부족해지면 가격은 감당하기 어렵게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우리나라의 석유 가격이 들썩들썩한다. 유류세를 잠시 낮춰도 소용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석유로 고기만 공급하는 게 아니다. 의식주는 물론 첨단 의료와 코로나19 극복도 석유 없이 불가능하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다시 퍼진다. 당국은 예외 없는 살처분에 들어갔는데, 2000년 이전에 우리는 조류인플루엔자를 몰랐다. 없었을 리 없는데, 조류인플루엔자는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논밭에 철새가 모여들 때 번진다. 우연일까? 안전반경보다 촘촘히 대형 양계장을 지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나치게 석유에 의존하는 삶이 만든 탐욕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이 됐다. 씨암탉 잡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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