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임조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지난 22일 정부가 약 94만7천 명에게 2021년도 주택분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고지한 후, 대부분 언론에서 ‘폭탄’이란 표현을 써가며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금방이라도 전 국민이 조세저항에 나서야 한다는 듯 연일 많은 지면과 공중파를 동원하고 있다. 이번 종부세는 전 국민의 1.8%만이 과세 대상이고, 그 중에서도 다주택자와(47.6%), 법인(41.3%)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더구나 3.5%에 불과한 1가구 1주택자의 73%는 평균 50만 원을 부담하게 된다. 

최근 수억 원씩 폭등한 집값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 수준인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부과된 종부세의 과세기준이 지나치게 높고, 이런저런 면제조항이 있어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언론에서 이런 주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과세목적과 과세대상 등을 고려할 때 언론이 바라보는 종부세에 대한 시선이 우리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향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세금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일정의 문명을 이룬 사회에서는 늘 존재해왔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세금은 지배가가 피지배자에게 강압적으로 부과하고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납세를 수긍하게끔 했다. 내세와 영혼구원에 대한 대가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지금 기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과세기준을 갖고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1692년에 영국에서 도입된 창문세는 영국의 건축양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창문의 수에 따라(프랑스는 창문의 폭) 세금을 부과하니 창문을 벽으로 막았고, 가뜩이나 우중충한 날씨에 사람들은 우울증과 전염병에 취약하게 됐다. 우리 역사에서도 지주가 부담해야 할 토지세를 농민에게 부담시키고, 갓난아기는 물론 죽은 사람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등 봉건제하에서 세금제도 폐해가 상당했다. 결국 곳곳에서 일어난 조세저항이 사회변화 촉매제 역할을 했고, 자유주의 사조 등장과 자본주의 발달은 프랑스혁명, 미국독립전쟁 등 세계사를 바꾸는 굵직한 사건들로 이어졌다. 

자본주의 태동기인 16~18세기, 국왕과 권력투쟁을 벌였던 부르주아 계급이 주장한 자연권적 소유권은 왕으로부터 그들의 재산권을 지키고 조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됐다. 이후 19~20세기, 재산은 없으나 참정권 등 정치적 힘을 갖게 된 시민들이 성장하면서 사회적 기본권 개념이 등장하고 조세 범위와 기능, 역할에 대한 논쟁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금은 ‘조세 법률주의’의 원칙에 의거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부과되고 있다. 그러나 조세징수를 두고 여전히 국가의 과세 권한을 제한하고 개인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자유권을 중시하는 입장과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먼저라는 사회권을 앞세우는 주장이 갈등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종부세 논란의 뿌리에도 결국 이 두 흐름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수백 년 전 절대왕정으로부터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자유권은 발전을 거듭해 이미 100년 전인 1919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서 명시했듯이 ‘모든 인간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와 ‘재산권 행사는 사회 공공복리에 종속된다’는 사회권으로 모습을 바꿨다. 우리 헌법에서도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사회권적 성격의 기본권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 역시, 우리가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서, 공동체의 도움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시대이다. 

고도화돼 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 사회를 더욱더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불평등이 프랑스혁명 당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어느 경제학자의 주장이 엉뚱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불평등 시대에 개인이 고유한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려면 일정 수준의 경제적 안정 그리고 의료, 교육 같은 필수적인 서비스에 대한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모든 시민 권리로 주어질 때 평등한 사회가 가능해진다. 

결국 인류가 추구하는 가장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속에서 연대적 방식으로 재정을 마련해야 하고, 그 중심에 세금이 위치해야 한다. 최근, 부과된 종부세를 세입자에게 부담시키겠다는 보도를 접하고, 조선후기 양반 지주들이 소작농에게 토지세를 전가시켰던 봉건적 악습이 떠올라 망연자실했다. 민주적 가치가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녹아들고 있는 21세기, 세금은 우리 모두를 위한 연대의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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