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신 사회2부
안유신 사회2부

국내 산업에서 여전히 제조업은 경제 발전의 중요한 토대이자 힘이다. 항공·기계 등 제조업의 뿌리 중 하나는 토종 주물산업이다. 금속을 녹인 쇳물을 부어 모래를 주성분으로 한 주물사 틀에서 정교한 부품을 만든다. 

최근 모 주물업체 대표가 공권력에 휘둘려(?) 수십 년 경영해 온 주물업체를 폐업해야 할 위기에 내몰렸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위태로운 형국이다.

폐기물관리법에는 주성분이 모래인 폐주물사는 환경에 무해하기 때문에 일반폐기물로 분류된다. 유해한 폐기물은 지정폐기물로 분류돼 엄격하게 관리된다. 

불법 폐기물 매립으로 문제가 된 모 지자체의 주물업체들은 H환경이라는 매립업체에 폐주물사를 위탁 처리했다. 하지만 H환경은 일반폐기물 처리만 가능한 업체임에도 폐배터리업체의 중금속이 함유된 지정폐기물을 불법 수거해 수년간 몰래 묻어 큰 문제로 비화했다. H환경이 일반폐기물인 폐주물사와 지정폐기물을 섞어 수년간 매립해서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오염 침출수가 여러 차례 나오면서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했다. 원상 복구 등 환경오염의 모든 책임은 당연히 H환경과 폐배터리업체들이 져야 하지만, 여러 차례 현장을 조사한 환경부와 해당 지자체는 주물업체들에까지 공동 책임을 물었다.

한 해 매출이 100억 원이 넘는 업체가 드물 만큼 영세한 30개 주물업체들에 수천억 원으로 추산되는 복구 비용을 물어내라고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 처분으로 이미 6개 업체가 줄폐업하고, 나머지 24개 업체도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절박한 처지다. 

이 같은 부당한 조치를 물리도록 하려고 비록 힘은 없지만 업체들이 똘똘 뭉쳐 법적 대응에 나섰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였고, 박대수(국힘·비례)의원이 환경부 국감에서 장관에게 부처의 입장을 확인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주물업체 관계자들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질 도리밖에 없다. 1만5천여 명의 주물업체 종사자들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앉아서 당하지만 못한다. 일만 열심히 하면 가족을 부양하고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리라는 믿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꼴을 두고 볼 재간은 없다. 힘과 목소리는 미약하지만, 제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인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주물업계 종사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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