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가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주최로 지난 12월 1일부터 3일까지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협동조합 정체성에 깊이를 더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는 1895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제1차 대회 이후 33번째 행사로, 한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유럽 이외 지역 개최는 1992년 일본 이후 19년 만이다. 이번 대회는 ICA 창립 125주년(2020년 기준)과 1995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채택된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 2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닌다. 개회식에는 85개국 400여 명이 직접 현장에 참석했고, 화상으로도 1천여 명의 전 세계 협동조합인들이 참여했다. 

ICA의 협동조합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협동조합이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 조직’이다. 협동조합의 가치로는 자조, 자기책임, 민주주의, 평등, 공정, 연대가 강조되고, 조합원은 협동조합 선구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정직, 공개, 사회적 책임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 등 윤리적 가치를 신조로 한다. 또한 ICA는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운영원리로서 7대 원칙을 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자율과 독립’,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협동조합 간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이다.

로버트 오웬(Robert Owen, 1771~1858), 윌리엄 킹(William King, 1786~1865) 등 선구적 협동조합 사상가들의 사상이 사회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협동조합을 이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빈부격차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협동조합이라는 ‘단결체’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법리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근로조건의 향상을 도모하듯이 농어민이나 중소기업인 등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권익 향상을 도모하게 한 것이다(거래 협상력의 강화 등). 우리 헌법 제21조 제1항의 ‘결사의 자유’, 제119조의 ‘경제의 민주화’, 제123조 제5항의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는 규정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에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시행한 이후 매우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전에는 농협법 등 8개의 개별 협동조합법이 있었을 뿐이다. 협동조합기본법과 8개 개별 협동조합법은 사회환경의 변화와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할 법적 과제가 존재한다. 특히 개별법 협동조합들에 대해 협동조합기본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는 점은 법체계상 문제점이 크다. 협동조합기본법 제13조 제1항은 "다른 법률에 따라 설립되었거나 설립되는 협동조합에 대하여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기본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별 협동조합법에 대한 모법(母法)으로서의 우선효(優先效)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명실상부하게 ‘기본법’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입법적 개선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그 밖에도 협동조합의 민주성·투명성 강화, 영리성·비영리성, 독점규제법 적용 제외, 비조합원의 사업 이용, 거버넌스(governance), 자본 조달, 조세·회계제도, 해산·청산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들에 대해서도 체계적 입법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향후 협동조합 법제를 연구하는 각국의 학자들이 ‘협동’을 통해 합리적·보편적 협동조합 법제를 마련하고 정착·확산시켜 나가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에서 열린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가 전 세계 300만 협동조합과 12억 명의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지속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소중한 모티브를 얻게 된 소통의 계기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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