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헌 인천개항장연구소 사무국장
안정헌 인천개항장연구소 사무국장

얼마 전 죽음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던 난민의 모습이 이슈가 됐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외국인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무국적자인 외국인’을 일컫는다.

"집을 거두고/ 마을 뜨는 풍경이 일어난다/ 바람에 몰려/ 내려닥친 몽고, 만추리아 /강 건너/ 산맥 넘어/ 줄줄/ 초원찾아 부족(部族)치고/ 마을 이루어/ 정착한 이곳/ 오천 년…." 

인용한 시는 조병화의 ‘1971년’(「먼지와 바람 사이」, 1972)의 일부분으로 ‘이민과 난민’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바람’에 몰려 만추리아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들이 떠나온 곳은 어디였을까?

최근 표명희의 소설 「어느날 난민」(창비, 2018)을 읽었다. 이 소설은 영종도의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종도 ‘공항신도시’, 아직 입주하지 않은 새 아파트가 늘어선 ‘유령의 공간’에서 난민처럼 떠도는 ‘강해나’와 그녀의 아들이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강민’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베트남에 파병됐던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캄보디아에서 자란 무국적자 뚜앙, 가문에서 정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의 위험에 처했다가 탈출한 찬드라,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쫓겨 온 모샤르와 한족 아내 그리고 두 아들, 백인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살인 위협에서 도망친 아프리카 출신 웅가와 그의 남편 미셸. 이들이 난민 캠프에서 거주하게 된다. 이 외에 지원센터의 ‘진소희’ 소장, ‘김영묵’ 주임, 주방책임자 ‘주여사’와 경찰관 ‘허진수 경사’ 등도 저마다의 사연으로 주류에서 소외됐다. 

이들의 삶은 마치 영종도의 운명과도 같다. 작별식이라도 하듯 해나는 베란다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발 아래 펼쳐진 광경을 내려다봤다.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바닥을 다 드러내 놓고 있었다. 바다의 민낯이나 다름없는 그 칙칙한 잿빛 개펄을 바라보며 해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드넓은 개펄 저 멀리로는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제방도 보였다. 두 개의 섬을 연결해 메우고 다지며 자연에 인공을 더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땅이 이 섬이었다. 어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과거도 없고 뿌리도 없는 곳. 사람으로 치자면 ‘근본 없는 자식’ 같은 땅이 이곳이었다. 그것이 자신과 이 섬을 끈끈하게 이어 주는 연결 고리였다.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영종도, 그 가능성은 이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몫으로 던져졌다. 

난민 신청이 거부당한 ‘뚜앙’의 자살로 소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진소희는 "이 지구별 위에서 인간은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어"라 하고, 털보 선생 김영묵은 "난민 유전자를 나눈 사람들의 미세한 연대로 이루어진 게 인류"라고 동조한다. ‘난민 캠프’, 그곳은 영원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여행지의 게스트 하우스’처럼 잠시 스쳐가는 곳이요, ‘새로운 여행자’를 위해 비워 줘야만 하는 곳이라고 소설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어디 ‘난민 캠프’만이겠는가.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바닷길로 세계인들이 몰려들었던 국제도시 인천이 이번에는 하늘길을 열었다. 연간 7천200만 명의 여객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발전했으며, 향후 연간 1억 명의 여객을 취급할 수 있도록 증설될 예정이라고 한다.

세계로의 관문 역할을 하는 인천광역시 중구의 영종도는, 국제적인 도시로 세계인들은 물론이요, 우리나라 곳곳에서 인천으로 이주해 정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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