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장 권위 있는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에서 5관왕을 차지한 여성 가수의 등장에 세상은 놀라워했다. 점잖은 가수에게 상을 수여하는 보수적인 그래미가 마약 전과로 미국 비자 발급에 문제가 있는 인물에게 상을 몰아줬기 때문이다. 이 가수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 ‘여자 팝 보컬’, ‘팝 보컬 앨범’에 이르기까지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뒤늦게 비자를 발급받았지만 그래미에 참석하지 못해 영국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위성 생중계로 공연을 펼친 모습은 자신의 개성을 잘 표현한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올해의 노래’로 선정된 ‘Rehab’은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위해 재활원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가사의 곡이다. 영화 ‘에이미’는 천재 싱어송라이터라 불린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불꽃같이 타오른 짧은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삐쩍 마른 몸과 대비되는 커다랗게 부풀린 헤어스타일, 양팔을 가득 채운 조잡한 문신과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과장된 아이라이너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대표하는 외형이다. 여기에 더해 공연 중에도 술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나 일상생활 중에 잔뜩 취해 사람들과 다투거나 부부싸움 뒤 엉망이 된 모습은 하루가 멀다 하고 미디어를 장식했다. 

흑인의 소울에 재즈를 가미한 1950~60년대 모타운 사운드를 부활시킨 에이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었고, 자신의 경험을 녹인 가사는 너무도 솔직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놀라운 재능에도 불구하고 에이미는 언제나 사고뭉치에 골칫덩이 이미지를 달고 살았다.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 소식 때문이었다. 

단 2장의 앨범으로 팝의 여왕이 됐지만 27세의 나이에 급성 알코올의존증으로 운명을 달리한 에이미 와인하우스. 다큐멘터리 ‘에이미’는 언론에 비친 구제 불능 중독자가 아닌, 여린 감성의 평범하지만 비범한 재능을 가진 한 소녀가 음악을 시작하는 그 첫 발걸음부터 담아내고 있다. 영상은 대중이 보지 못한 그녀의 일상과 데뷔 앨범 발매 및 2집의 세계적인 성공에 이르기까지 에이미의 다양한 모습들을 친구와 가족, 가까운 지인의 눈과 입을 통해 전달한다. 

자신의 음악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에이미는 인기 가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시 평범한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재능을 반납하겠다고 말할 만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그녀는 특유의 솔직한 화법과 태도로 늘 가십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먹잇감이 됐다. 잘못된 비난에서 오는 피로와 오해는 약물과 알코올의 의존도를 높였고, 결국 2011년 에이미는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다.

두 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의 러닝타임은 셀프 동영상, 친구들과 찍은 사진, 공연 실황, 뉴스 영상과 파파라치 컷으로 가득 채워졌다. 미디어가 담은 전성기 시절의 마른 몸에 공허한 눈동자의 상처 입은 에이미와는 달리 유명세를 타기 전 그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십대 소녀의 눈빛에는 사랑, 희망, 행복이 넘실대고 있었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의 재능 있는 음악가의 짧은 삶은 결국 누구의 탓도 아닌 본인이 선택한 일의 결과였지만, 노래 하나로 행복해하던 한 소녀의 밝은 미소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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