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이강동

고려 왕궁이었던 개성 만월대는 장엄한 건축물이었다. 신라 승려 도선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려의 국도로 정해지고 창건된 건축물이었다. 개성은 752년 신라 때 명명된 지명이라고 한다. 신라에서는 개성·송악이라 하고, 고구려에서는 다비흘·부소갑이라 부르던 지역이다. 

송나라에서는 개성 송악산을 의태산이라 부르고 그곳에 고려왕궁이 건립돼 있다고 했다. 만월대 왕궁의 궁전인 건덕전은 나랏일을 보던 정전이었고 원덕전·장화전·회경전·중광전·경령전·종묘·적경원·광북문·창평문·신봉문·여합문·회경문·신봉루 등 고려 왕궁의 장엄한 건축물들이 있었다. 선친들이 낙랑의 유민이라고 전해지는 고려 태조 왕건은 해적의 두목으로 활동하던 인물이다. 태봉국에서 궁예와 활동하던 왕건은 단독으로 삼한 지역 여러 내란들을 모두 평정하고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아내 삼한 전 지역을 통일시킨다. 919년 강원도 철원에서 개성을 고감이라고도 부르며 고려 국가의 왕도로 정하고 고려 왕궁 만월대를 창건한 것이다. 

왕경, 개경, 황도, 송도, 송경, 중경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렀던 개성을 말하면서 인천과의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몇 가지를 빼 놓을 수 없다. 서해용궁, 왕건, 정몽주다.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의 혼인 설화가 있는 서해용궁을 기리는 바닷가 마을 인천 동구 만석동 옛 선인들에게서 이어져 왔던 서해용궁 제례 행사가 있었다.  개성 선죽교를 회고하는 일월 광명 정몽주라는 시구로 위로받고 있는 정몽주의 후손들이 인천에 있다. 연수구 동춘동에 일가의 후손들 묘역을 인천시는 시 문화재로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 특별전시관에서 지난달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성과 전시회가 열렸다. 만월대에서 출토된 금속활자와 관련된 전시회는 2019년 11월 서울 덕수궁 선원전 터에서 열렸었다. 복제품으로 전시됐다고 한다. 

남북 역사학자들이 한 팀이 돼 만월대 발굴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7년이었다. 고려 궁터 만월대에서 2017년 북한 학자들이 성할 선(傓)자의 금속활자 1점을 출토하는 성과가 있었다. 지금까지 금속활자 5점을 북한 학자들이 출토해 냈다. 

칙·조·명·명·전의 금속활자다.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인 1점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1점 등 7점의 금속활자가 출토됐고, 2015년에도 남북 학자 공동으로 만월대 신봉문 부근에서 1점을 출토하는 성과가 있었다. 출토된 금속활자 모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상정예문을 인쇄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2010년 9월에는 상정예문과 불교 경전 증도가를 인쇄하는 데 사용했다는 금속활자가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발견된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의 활자라는 경북대 남권희 교수의 주장도 있었다. 

발견된 금속활자가 진짜다 가짜다라는 공방이 있은 후 2017년 4월 문화재청은 고려의 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소식이 있기도 했다. 2019년 10월 국회 감사에서 문화재청은 2020년부터 3년 동안 5억5천만 원의 예산으로 금속활자를 재조사해 보고하겠다고 답변했다. 

발견된 금속활자가 진품이라는 연구도 있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경북대 산업협력단 소속 연구원들이 18개월간 연구한 결과 무더기로 발견된 금속활자는 상정예문과 증도가를 인쇄한 금속활자로 판명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주관으로 열린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 작업 성과 전시회 소식을 들으면서 인천은 고려의 상정예문을 1232년 인쇄한 곳이고,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있는 문화(문자)창조 도시이다.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금속활자 발굴 성과 전시회가 인천에서도 열린다면 더 뜻깊을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