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 동산중학교 교장
황규수 동산중학교 교장

12월은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의 끄트머리 달이라는 의미에서 순우리말로 매듭달이라 일컫는다. 2021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가 처음 시작될 때는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되기를 기원했다. 그런데 아직 그 기미는 보이지 않고, 2024년까지 유행이 계속될 수 있다고 예견되기도 한다. 그러면 이처럼 어수선한 상황에서 남은 2021년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아야 하겠는가? 

필자는 최근 지난해에 이어 올 연말 두 번째 동인지 간행을 준비하는 「서곶문학(西串文學)」 동인들과 시간을 같이하며 한 해를 정리하고 있다. 회장 하서를 비롯해 이은춘·박영옥·송선영(유정)·박경분·박진 등 6명의 등단 시인들이 10편 정도씩의 작품을 모아서 또 한 권의 동인시집을 엮게 됐는데, 이들이 여기서 보여 주는 시 세계는 각기 나름대로 독자성을 지니지만 연관성도 보여 그 공통 특성에 따라 나눠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박진의 시 ‘2021년 지하철 풍경’에는 현대인의 삶의 한 단면이 잘 그려져 있다. 

"숨 막히는 오늘이 뿔났다/ 말을 잃은 마스크들이 뿔났다// 매일 같은 출근시간이지만/ 늘 낯선 모습이다/ 아니 똑같은 붕어빵이다/ 마스크, 꺾인 목, 핸드폰을/ 틀에 넣어 찍어 낸다/ 머리에 뿔 하나씩 달고/ 거친 주파수를 따라다닌다/ 투명인간처럼 코로나19도 따라와 숨는다/ 누구에게 접선할까 호시탐탐 노린다/ 칸칸이 한 판 대결/ 아주 길고 깊은 터널 속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이다/ 서로 눈 마주치지 말 것/ 적당한 거리 유지할 것/ 지하 실험실에서 태어나/ 하루에 한 번씩만 지상으로 올라오는/ 하얀 복제인간들이 긴 레일을 따라 오른다// 하늘이 열리고 장막 사이 내미는/ 지상의 빛 한 줄기/ 눈이 부시다."

이 시에서는 현대인이 ‘마스크들’, ‘붕어빵’, ‘하얀 복제인간’ 등에 빗대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똑같이 마스크를 쓰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느라 목을 꺾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하철을 타면 흔히 볼 수 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는 마스크로 그곳의 풍경을 일부 바꿔 놓기는 했지만, 다시 붕어빵처럼 똑같은 모양이 되게 했다. 

이에 비해 시의 화자인 자아와 자연 또는 대상 사이에 서로 같아지거나 어울려 하나가 되는, 자연동화 혹은 물아일체로서의 특징을 보여 주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더욱이 이들 시에서는 녹화, 찔레꽃, 산수국, 벚꽃, 금낭화, 접시꽃, 유홍초, 개망초 등 꽃이 많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시인은 자연의 원리에서 삶의 이치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구수곡 골짜기/ 녹화산수국 아름답다// 살그머니 문틈으로/ 가만가만 들여다볼 때/ 일 듯 말 듯 두근대며 다가오듯/ 녹색으로 물든 헛꽃의 자태// 원시의 숲속 벌거벗은 여인 같은/ 녹화 산수국이여// 조심조심 다가서 들여다보니/ 네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구나/ 녹색 눈이 반짝이는 너/ 너는 나의 벗이야."

이 시는 유정의 ‘녹화 피는 골짜기’인데, 여기서는 구수곡 골짜기에 핀 녹화산수국을 대상으로 그 아름다운 자태를 ‘원시의 숲속 벌거벗은 여인’에 직접 빗대어서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4연에서는 그 꽃을 벗에 비기어 표현함으로써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산수국을 의인화해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 시는 자연에 동화돼 그와 내가 하나가 된 듯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박경분의 ‘접시꽃이 피었다’와 같은 시에서는 자연물 또는 자연 현상이 자족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어 주목된다. 목련나무 베어진 자리에서 접시꽃이 핀 것을 보고 스스로 만족하게 됐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특히 이 시의 "이만하면,/ 이만하면 이제는 /되었다"라는 구절에 잘 제시돼 있다. 

이처럼 자연의 원리에서 삶의 이치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면을 시에서 보여 준 점은, 실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곶문학(西串文學)」 동인들은 붉은 서쪽 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