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송 국제PEN한국지부 인천지역 부회장
신미송 국제PEN한국지부 인천지역 부회장

성탄절부터 연말연시가 이어진다. 천지간 세상사를 축복과 반성과 성찰로 마무리하고 새 기운을 받아 희망하고 계획하며 준비하는 시간이다. 밤이 가장 긴 날은 지나갔다. 음(陰)을 물리치고 양(陽)을 맞아들이는 시기가 도래했으니 세상의 기운이 밝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남아프리카에 사는 원시부족 바벰바 부족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바벰바 부족은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어쩌다 죄를 짓는 사람이 생겨나면 해결 방법이 그지없이 복되다.

부족 사람 중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면 사람들은 그를 마을 한복판에 있는 광장에 데려온다. 어른, 아이,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광장으로 모여들어서 죄인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둘러선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부족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그 사람이 예전에 행했던 좋은 일들을 큰 소리로 외친다. 그 사람이 베푼 선행과 미담과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을 하나씩 하나씩 마을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 사람은 우리 가족에게 식량을 나줘 줬습니다. 이 사람 덕분에 큰 사냥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숲에서 넘어져 다쳤을 때 나를 집까지 부축해 주었습니다. 저 친구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마을에 일손이 필요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손을 보탰습니다."

광장에 모인 마을 주민 모두는 농담을 하거나 지어내거나 하지 않고 느낀 그대로를 진지하게 말해야 한다. 이 의식의 핵심인, 죄 지은 사람을 비난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책망하는 말도 하면 안 되는 전통을 지킨다고 한다. 칭찬의 말이 바닥이 나도록 다 하고 나면 그때부터 마을 축제를 연다.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칭찬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준다. 이 의식을 통해 새사람이 되었다고 인정한 부족 사람들은 음식과 춤과 노래로 잔치를 열어 그 사람을 부족의 새로운 일원으로 받아준다고 한다.

실제로 이렇게 칭찬 세례를 받고나면 죄지어 두려움에 떨면서 위축되었던 그 사람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부족민의 선의에 감동해, 정말 새사람이 돼 이웃의 사랑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한다. 바벰바 부족은 처벌과 분노와 복수 대신 진심으로 그 사람을 포용해 애정 어린 방법으로 부족민으로서 그 사람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경찰과 판검사의 역할보다는 부족민 모두가 변호사가 돼 광장 중앙에 세워진 사람을 감화시키는 판결이다. 범죄 행위에 대한 바벰바 부족의 이 해결 방식은 범죄 없는 부족을 지켜오는데 일조를 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범죄 예방을 위해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기도 한다. 솜방망이 처벌이 범죄자를 양산한다는 말이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다. 수렵과 채취로 사는 원시 부족인 바벰바 부족 사회와 복잡다단한 우리 현실이 같을 수는 없다. 법질서를 위한 범죄 해결 방법의 효용성이 다르기에 무조건 옳다 틀렸다로 편을 가르기는 어렵다. 합당한 처벌과 함께 교화의 필요성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뉘우쳐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교화도 처벌 못지않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난장처럼 소란스럽다. 감투를 쓰고 있는 힘 있는 이들이 거대한 가속으로 혼란을 부추긴다. 허물을 캐고 비방하고 모욕하고, 가해진 생채기에 보란 듯이 복수하느라 비난 게임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한 자리 꿰차고 있는 분들의 처신이 삐걱거려 보기가 불편하다. 

나쁜 소식을 듣고 싶으면 뉴스를 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2년을 내리 숨통을 조이는 코로나19에 지쳐가고 대선 후보자와 관련된 악재들이 성성해 어지러운 세밑이다. 바벰바 부족 사회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새 봄, 권좌를 부여받을 1인자에게 바벰바 부족의 지혜와 포용을 기대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