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태 섬마을선생님연구회 운영위원
이영태 섬마을선생님연구회 운영위원

거지 이야기는 세계 어느 곳이건 존재한다. 거지는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인데 유의어로 걸식자(乞食者), 걸인(乞人)이란 표현이 있다. 

사람들이 특정인에게 "거지 같은 게 어디 와서 행패냐" 혹은 "거지발싸개"라고 조롱할 때에도 거지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 거지가 존귀한 인물로 격상돼 특정 이야기를 구성하는 경우가 ‘왕자와 거지 이야기’이다. 

개항장에서 채동지(蔡同志)로 불리던 걸인(乞人)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조롱을 받던 걸인 이야기가 인천 설화집에 수록된 경우는 채동지의 경우가 유일하다. 

채동지 이야기는 「윤치호 일기」(1920), 「개벽」(1924), 「인천석금」(1955), 동아일보(1959), 「향토인천」(1988), 「인천지방향토사담」(1990)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천석금」(1955)에 등장하는 채동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인천에 온 35세(1910년께)의 거인 골격의 걸인(乞人) 채동지

2. 웃터골 부근에서 사망(1937년께)

3. 서곶 출신 비운의 아기 장수

4. 힘센 걸인에 대한 일본 경찰의 취조에 벙어리 행세로 벗어남

5. 아이들의 조롱에 대한 외마디 반응, 주부들에게 호의적

6. 침(唾液)의 약효(藥效)

7.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아가, 채동지 온다’

8. 흡연·음주·절도를 하지 않는 채동지

9. 영원한 수수께끼, 이인(異人) 채동지

「인천석금」 이전의 기록의 경우, 채동지는 자신의 타액(침)이 묻은 과자를 통해 의료업을 했던 ‘미신’의 행위자이거나 ‘요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인천 설화집 속에 있는 채동지는 ‘영원한 수수께끼 인물 채동지’(「인천석금」)이거나 ‘인천의 명물’(「인천지방향토사담」)로 규정돼 있다. 채동지 이야기를 구전하던 개항장 사람들에게 채동지는 단순히 거지이거나 요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전승소(傳承素)에 기대 구전되기 마련이다. 전승소를 통해 구전 담당층을 확정하고 그것을 전승시킨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흥미소는 주로 민중계층에 작용하는 전승소로서 설화를 전파시키는 동인(動因)이다. 

그리고 효용소는 종교나 주술담당자가 그들의 신앙이나 사상을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끝으로 목적소는 주로 지배계층이 자기네의 문화적 우월과 교훈성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개입된 동인이다.

이야기의 전승소에 기대 보건대, 걸인이되 골격이 유난히 컸던 벙어리의 이야기가 인천 채동지의 원형이다. 

거인 골격의 벙어리 걸인인 것만으로도 흥미를 끌 만했는데 여타의 걸인들과 달리 음주, 흡연, 절도 등과 거리를 뒀기에 구전 담당층은 이야기를 더욱 확장시켰다. 그와 관련해 아기 장수 출신이라든가, 일본 경찰의 취조를 받았다든가,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든가 등도 흥미소에 의해 견인된 것들이다.  

이야기는 단순설화에서 복합설화로 변화한다. 단순설화가 전승되면서 담당층들의 세계관이 반영되기 마련인데, 인천 채동지 이야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인 골격의 벙어리 걸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승하면서 생긴 일련의 현상들은 인천지역 이야기 담당층들의 바람과 밀접하다. 개항장의 전승층은 그곳을 배회하던 거인 골격의 걸인 채동지를 통해 아기 장수의 모습을 읽어 냈다는 것이다. 

경술국치(庚戌國恥, 1910년) 이후 망국의 한(恨)으로 거지 행각을 했다는 서사(「인천지방향토사담」)도 전승층의 이러한 심리 기제와 관련돼 있다. 하지만 개항장 전승층이 고대하던 온전한 장수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웃터골 주변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영면(永眠)한 공간은 그가 따스한 볕에 기대 잠을 자거나 옷을 말리거나 혹은 이를 잡던 곳이었다. 이러한 결말에도 개항장 구전 담당층들의 바람과 좌절이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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