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국정농단 사건으로 22년 징역형을 받고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면(特別赦免) 단행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지 4년 8개월 만인 31일 0시를 기해 풀려난다. 특사(特赦)가 발표된 지 수일이 지났지만 여야, 시민단체 등에서 긍·부정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면(赦免), 그것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헌법 제79조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이어 사면법 제2조에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구분한다"라고 사면의 종류를 구분하고, 제9조에서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 및 복권은 대통령이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상기와 같이 일반사면이 아닌 특별사면은 국회의 동의를 필요치 않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사면의 역사를 보면 과거 군주시대에는 군주가 베푸는 자비(慈悲)의 일종으로 생각해 은사(恩赦)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大選)을 앞에 두고 큰 변수로 작용할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사 단행은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며 여론이 분분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국면에 따라 여야 간 득과 실이 극명하게 달라질 것이라는 정치권 진영 나름대로의 해석들을 하고 있다. 

긍정과 부정을 떠나 여야 공히 잣대는 오로지 자신들의 유불리 여하다. 박 전 대통령 특사로 촉발된 이명박(MB)전 대통령 사면 문제를 놓고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간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이 후보는 이 전 대통령 사면에 반대한 반면 윤 후보는 긍정적이다. 이 후보는 "MB를 사면하면 통합을 저해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윤 후보는 "고령에다가 건강상태도 좋지 않다. 미래 국민 통합을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사면을 단행할 때마다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곤 했었다. 이번 문 대통령의 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특별사면도 마찬가지다. 나는 역대 정부에서 사면을 단행할 때마다 서너 번에 걸쳐 사면에 대해 언급했다. 그때마다 정치사면은 그만 멈출 것을 강조하곤 했었다. 임기가 끝나면 갈 곳은 교도소로 정해지곤 했던 것이 우리 역대 불운의 대통령들이었다. 임기가 끝난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을 때마다 국민들은 형량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무리 사형 또는 무기징역 등 중형을 언도받아도 "곧 사면으로 풀려나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년에서 4년 상당의 수감기간이 지나면 특사를 통해 풀려 나곤 했다. 당초 사면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예는 없었다고 사료된다. 대상자 선정에 경제상황 고려보다 정치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그들만의 ‘사면 잔치’로 행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이 나올 때마다 정부는 국민 정서 운운해 왔지만, 그것은 그들의 치밀한 정치계산 속에 이뤄지곤 했다. 이번 특사도 진정 국민 통합을 바라는 국민감정이 기준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면이 단행될 때마다 찬반논쟁이 치열한 우리 정치권이다. 사면권, 이제는 과거처럼 치자(治者)의 필요에 따라 꺼내 휘두르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브 라드브르흐(Gustav Radbruch)는 사면을 논하면서 "사면이라는 법제도는 모든 법이 얼마나 의문스럽다고 하는 것, 즉 저 법 이념 내부의 긴장관계 및 법 이념과 다른 이념들, 예컨대 윤리적 이념이나 종교적 이념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는 사실에 대한 솔직한 인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권리나 권한 따위를 본래의 목적이나 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행사하면 그것이 남용(濫用)이다. 이익이나 권리를 교묘한 수단으로 독점하면 그것이 농단(壟斷)이다.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라도 남용이 지나치면 농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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