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壬寅年)은 강인한 인상을 주는 만큼 흑호처럼 용맹한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 본다. 새해 첫 수요일에 소개하는 영화는 기분 좋은 기세를 나누는 작품으로 선택했다. 2020년 개봉한 호주 영화 ‘라라걸’이다. 이 작품은 호주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경기이자 위험한 스포츠로 손꼽히는 경마대회 ‘멜버른컵’에서 우승한 첫 여성 기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861년 시작된 이래로 "국가를 멈추게 하는 경기(The race stopsthe nation)"라 불리는 이 대회에서 여성 기수의 등장은 4번에 불과했으며, 2015년 미셸의 우승은 15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일을 해낸 미셸 페인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집보다 마구간에서 보낸 시간이 많고, 잠을 잘 때에도 담요를 들고 마구간으로 향하는 아이 미셸은 목장을 운영하는 페인가(家)의 막내딸이다. 무려 10남매 중 막내인 미셸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말과 친해졌고, 승마 기수인 언니·오빠들의 모습을 동경해 왔다. 그러던 중 언니 브리짓이 낙마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하자 엄격한 코치로 미셸에게 많은 조언을 해 준 아버지는 막내딸의 꿈을 반대한다. 결국 집을 떠나 대도시로 향한 미셸은 여성에게 벽이 높은 기수가 되기 위해 허드렛일도 마다않으며 기회를 엿본다.

그렇게 미셸은 끈기와 노력 끝에 기회를 얻어 대회에 출전하고, 우승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낙마해 큰 사고를 당한다. 골절, 뇌출혈, 언어장애와 전신마비라는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을 타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고통스러운 재활치료를 이겨 낸다. 그리고 2015년, 기수로서 적지 않은 서른이라는 나이에 미셸 페인은 우승 확률 1%라는 세간의 냉소와 편견을 깨고 우승컵을 손에 쥔다. 그 트로피는 3천200번의 대회 출전, 7번의 낙마사고, 16번의 골절이라는 이력서 끝에 얻은 성취였다.

호주 최대의 경마 축제에서 우승한 최초의 여성 기수 미셸 페인의 실화를 담은 영화 ‘라라걸’은 승리의 쾌감보다는 포기하지 않은 인내의 과정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셸의 실력과 가능성은 끊임없이 부정당했다. 남녀의 신체 차이에서 오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엄격한 코치이자 스승인 아버지가 세운 전략은 ‘빠르고 강하게’가 아닌 ‘인내심’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선두로 달리다 보면 후반부에서 체력이 떨어지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리되, 말과 말 사이의 ‘틈’이 보이는 순간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는 가르침은 미셸이 그 어떤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힘을 줬다.

사실 이 영화는 다 보지 않아도 결과가 예측 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미셸이 우승컵을 쥔 순간 환호성을 지르게 한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을 떠나 자기 앞의 난관을 인내심으로 버티고 열정으로 질주하는 모습에서 오는 감동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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