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이강동

중국 문명의 발현지라고 말하는 황하는 서역에서 발원된다고 한다. 중국 대륙 중원 지역의 대평원은 오랜 기간 투르키스탄 고원 지대에서 흘러온 황토가 쌓이고 쌓여 조성됐다고 한다. 드넓은 대평원 황토지역 가운데로 황하가 흐르고 있다. 황하의 방향도 수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수시로 변해 여러 지형으로 하류가 생겨나 황하를 사류·곡류라고도 불렀다.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황하는 위치도 변해 왔다. 서안에서 보정으로 흘러 북경과 천진 사이로 해서 발해로 나왔다. 강소성으로 황하가 흐르다가 다시 남하해 양주 방향으로도 흘렀다고 한다. 1900년대에 이르러 지금의 황하 모습이 됐다고 한다. 중국의 7개 성으로 흐르던 황하는 중국 역사의 변천사를 가지고 있으며, 황하 유역이 그 무대였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인들의 공경을 받고 있는 황하 유역 주변의 하남성·산동성·열하를 비롯해 요동·요하·만주 지역은 지석묘(고인돌)·옹관묘들이 많이 발견됐다. 동검·창·석기류들도 발굴됐다. 한반도 지역에서 발견되는 지석묘·옹관묘들과 같은 형식이라고 한다. 한반도로부터 중국 대륙 중원 지역에 이르기까지 장례문화 풍습이 같은 지역이었다. 우리와 중국 학자들은 중국 대륙 중원 지역에서도 동이족들이 생활했다고 했다. 신문에 연재됐던 ‘이덕일 사랑’에서도 맹자는 중국에서 성인으로 부르는 은나라 순 임금은 동이지인 이라고 했으며, 하남성 은허 지역은 중국 영토가 아닌 동이족의 국가였다고 했다. 

2020년 11월부터 중국 국영방송 CCTV는 중국 국민들에게 중국 역사를 알리고 고취시키려는 역사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바로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30분에 방영되는 ‘중국 고고 대회’이다. 지난 12월 12일 방송에서는 갑골문자, 중국 고대 상나라의 도성과 황후의 묘, 각종 유물들이 은허 지역에서 출토된 과정들을 보여 줬다. 하남성 은허 지역에서 3천 년 전에 생활하던 동이족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해 새긴 갑골문자와 중국 상나라의 유적·유물이 대규모로 쏟아져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중국 최고의 학자들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석장여·하정·유환장·이제·양사영·유요·기연패·이광우·호후선·왕상이 1929년 은허 지역에서 조사·연구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1899년 중국 최고의 금석 학자 왕의영에 의해 갑골문자가 처음 조사·연구된 후 재조사에 나선 것이다. 

하남성 은허 도시는 갑골문자 발견으로 2006년 세계문화유산도시가 됐다. 갑골문자는 동이족 문자라는 주장은 중국 고고학계에서도 나왔다. 갑골문자보다 더 오래된 골각문자가 동이족이 생활하던 산동성에서도 발견됐다. 골각문자도 동이족의 문자라고 추측해 봐도 좋을 듯싶다. 산동성 창러현에서 중국 역사를 1천 년 앞서게 했다는 골각문자가 발견됐다는 산동대 미술학 연구소의 발표를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중국 저명 학자들의 모임 단체인 은상문화협회 소속 학자들도 갑골문자보다 더 오래된 것이 골각문자라는 산동대 미술학 연구소의 주장에 동의했다고 한다. 

골각문자는 산동성 창러 지역에서 발견됐다고 해 창러 골각문자라 부른다. 산동성에서 고미술품 수집가로 활동하는 소광덕이라는 사람이 2004년부터 창러 지역에서 수집한 수백 개의 골각문자를 조사·연구한 결과 소·사슴·코끼리의 뼈에 새긴 골각문자임을 밝혔다. 뼈들의 색깔과 석화 상태를 볼 때 문자를 새긴 연대는 4천~5천 년 전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있었다. 20세기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갑골문자였다면 골각문자 발견은 21세기 중국 고고학계의 역사적 일이라고도 했다. 

중국 고대 신앙도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것이 동이 신이다. 중국 대륙 중원 지대 하남성 동북부 지역으로 흐르는 혜제강 상류 부근에 동이사당이 있다는 문헌들도 존재해 동이지인들의 활동 무대는 광범위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방송에 출연한 중국 학자들은 갑골문자는 동이지인들의 문자라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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