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목PEN리더쉽연구소 대표 /공동체라디오 인천FM 이사
홍순목PEN리더쉽연구소 대표 /공동체라디오 인천FM 이사

전 세계적으로 인류는 1, 2차 세계대전 이후 요즘처럼 죽음을 곁에 가깝게 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때마침 등장한 오징어게임은 온 세계를 들끓게 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해서 통과하지 못하면 죽음이라는 치명적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생사를 가르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내몰리는 현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낸 영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다. 그럼에도 충격적인 이유는 매일매일 죽음이 카운팅되는 코로나19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 정국은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서바이벌 게임이다. 정치생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정치생명의 열쇠는 국민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선거에서 이기면 생명을 이어가지만 패배는 곧 정치생명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게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말이다. 때문에 전쟁과 같은 선거에서 누구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승리는 직접 싸워 이김으로 얻어질 수도 있지만 상대가 스스로 안으로 무너져 패배를 자초함으로써 주어질 때가 많다.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봤다. 또한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 놓은 후에 싸운다는 말은 곧 내부 결속을 얼마나 다졌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는 교훈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후보 경선 이후에 원팀을 만드는 데 골몰하고 있지만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 국민의힘이 보여 준 내부 갈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겨 줬다. 상대와 싸우기 전에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일 것이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스스럼없이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됐을 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변화무쌍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긴장감 넘치는 갈등과 봉합의 장면을 보면서 국민들은 아마 희생과 양보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전선 너머의 상대를 앞에 두고 둘 다 사는 방법이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역시 쉽지 않았기에 짧지 않은 긴 시간을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필자가 대학교 다닐 때 경영학과 교수님이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내주고 그룹별로 분석해 보라고 했다. "친구 사이인 두 청년이 석촌호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됐다. 둘은 심하게 다투다가 석촌호수에 빠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싸움을 그치지 않고 몸싸움을 계속하다가 결국 둘 다 익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이 익사한 지점은 죽을 만큼 물이 깊지 않은 곳이었다."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일간지 사회면에 단신으로 난 기사였다. 정해진 답은 없다고 했다. 당시 필자가 속한 그룹에서 어떻게 분석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보여 준 모습이 바로 위의 과제의 내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친구가 그렇고, 싸움이 그렇고, 죽을 때까지 싸우는 모습이 그렇다. 그들은 왜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을 놔두고 둘 다 죽는 방법을 택했을까. 자존심과 명분 때문이었으리라. 냉정하게 말해서 정치생명이 풍전등화의 처지에서 그 뻔히 예상되는 결과를 국민들은 알 수 있을진대 저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다만, 짐으로써 이기는 선택을 하기 싫은 것 이외의 어떤 답이 있겠는가.

 정치인은 공복이다. 국민들은 이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요구한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보여 줬던 국민의힘의 드라마에는 희생과 봉사는 없었다. 그렇다면 정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당이 집권당이 됐을 때 그동안 보여 주지 못했던 희생과 봉사를 국민 앞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국민들이 기대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어찌됐든 갈등은 극적으로 봉합됐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이 됐던 여러 가지 조건들마저 정리가 됐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민의 먹거리를 지키고, 국민들의 희망을 지키겠다면 그 큰 대의와 초심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내려놓음과 희생을 통해서만이 흐트러진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럴 때라야 국민들이 선택을 통해서 사는 길을 열어 줄지 누가 알겠는가? 요는 소를 이기고 대에서 지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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