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시인
이태희 시인

최근 한 도서관에서 인문강좌를 진행한 후 수강했던 분들로 후속 독서모임을 꾸렸다. 그 첫 토론 작품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골랐다. 

「월든」이 처음 출간된 해가 1854년이니 약 170년 전의 일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두 세기를 건넌 오늘날, 산업과 경제의 초고속 성장 속에서 더욱 황폐해진 자연 앞에 되새겨야 할 가치들이 수두룩했다.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청년 소로우는 스물여덟의 나이인 1845년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2년여 동안 살았다. 그가 홀로 숲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뭘까? 스스로 답한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인생을 의도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로우의 말로 풀어 보자면 ‘체념의 철학’에 따르지 않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가리킨다. 흔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는 순응적 태도에서 벗어나는 삶을 말한다. 

어느 시대건 변혁이 없는 시기는 없다지만, 소로우가 살다간 19세기 중반도 상당한 경제적 변혁기였다. 당시 변혁을 대표하는 문명의 이기는 단연 철도였다. 한 백과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철도가 미국으로 전해져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83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소로우의 10대 시절인 1835년 무렵에 이미 미국에서 160㎞ 이상의 철도가 건설됐다고 한다. 실제로 「월든」에 삽입된 다음과 같은 구절은 철로에 대한 소로우의 단상을 보여 준다. 

"철로는 나에게 무엇인가?/나는 그것이 어디서 끝나는지/결코 보러 가지 않는다./철로는 계곡 몇 개를 메워주고/제비를 위해 둑을 쌓기도 한다./철로는 모래를 휘날리며/검은딸기를 자라게 한다."

속도와 문명 발전의 대표적 상징물인 ‘철로’를 통해 문명비판적 성찰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검은 딸기’는 자연 파괴의 엄청난 결과를 함축하고 있다. 

또 소로우는 "사람이 철로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다. 실은 철로가 사람 위를 달리는 것이다. 철로 밑에 깔린 저 침목들이 무엇인지 당신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침목 하나하나가 사람인 것이다"라며 경제성장과 문명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는 끔찍한 폐단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생산율에 떠밀린 안전불감증의 숱한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소로우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는 지속적으로 말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에 세 끼를 먹는 대신 필요할 때 한 끼만 먹어라. 백 가지 요리를 다섯 가지로 줄여라." 

최근 주목되는 ‘미니멀리즘’의 창시자 혹은 선구자의 목소리로 읽을 만한 내용이다. ‘무소유’를 실천하고자 했던 법정 스님이 월든 호숫가를 세 번씩이나 방문하고, 「월든」을 늘 가까이 두고 읽었다는 전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실천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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