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022년 현재, 지구 가장자리 지층은 안전한가? 2021년은 ‘홀로세’라는 지층의 이름을 ‘인류세(anthropocene)’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던 네덜란드 화학자, 1995년 오존층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뤼천이 세상을 떠난 해다. 2000년 세계층서위원회에 모여 홀로세 지층의 위기를 걱정하던 중 무뚝뚝하게 "인류세"로 변경하자고 제안한 그는 20년이 지나도 회복될 기미가 없자 자신의 삶을 홀연히 마감했다.

대유행의 규모를 4차례 키운 2021년 코로나19 파고를 이어받은 2022년은 감염병 파고에서 벗어나려나? 세계를 휩쓰는 오미크론 변이가 우리나라에 와서 아직 잠잠하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경각심을 내려놓는 순간 여지없이 규모를 키우는 감염병이 아닌가. 강화한 거리 두기와 백신 효과로 델타 변이는 숨죽이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 바통을 받으면 달라지리라 전문가는 전망한다. 하루 1만 명 이상 확진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언제 일상을 되찾을까?

방역을 선도한다고 자부하는 우리뿐 아니라 의학 수준이 눈부신 해외 국가마다 코로나19 퇴치에 막대한 예산, 인력, 에너지를 동원하지만 분명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전문가는 막중한 노력으로 어떻게든 억누를 코로나19보다 그 이후를 걱정한다. 기후변화로 녹는 동토층을 뚫고 창궐할 감염병이 한둘 아니라는 거다. 병증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코로나19 상흔이 얼룩진 지층에 만연한다면 어떤 재앙으로 이어질까?

온난했던 홀로세 지층에 다채로운 생물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는 생태계가 안정적이었다. 홀로세에 농사를 시작한 인류는 땅과 흙에서 번성해 왔지만 지나친 탐욕으로 파탄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래서 인류세다. 콘크리트로 연결이 차단된 인류세 생태계는 생물다양성이 단순해지면서 재해에 대한 완충력을 잃었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기상이변은 인류세 지층에 어떤 감염병을 퍼뜨릴지 모른다. 생태계 회복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빗발칠 감염병은 코로나19보다 위험할 텐데, 대책은 디지털이다. 땅과 흙을 망각하며 허공을 헤맨다.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사스와 메르스도 박쥐가 매개했다. 비둘기만큼 커다란 박쥐는 감염병 이전에도 먹어 왔는데, 요즘 사람 사이로 퍼진 이유가 무엇일까? 인류세를 맞은 땅과 흙이 황폐해진 까닭이다. 파괴된 생태계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사람으로 급속히 번졌다. 결국 화석연료의 과소비가 부른 부메랑인데, 디지털로 기후위기 대응을 선도하겠다고 나선다. 디지털은 신기루다. 겉보기에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화석연료 없으면 작동이 아예 불가능하다.

최근 한 텔레비전 뉴스는 기후위기 대응으로 디지털 농업을 연속 소개했다. 거대한 온실에서 인공지능으로 8배 이상 수확할 뿐 아니라 운송 거리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든다고 소개했다. 그럴까? 1만 년 전부터 생태계와 기온이 안정된 홀로세의 땅에서 다채롭게 농사지어 온 구태를 내팽개치는 걸까? 생명공학 기술이 창안한 배양육 보도 역시 비슷한 논조였는데, 신기루다. 기술과 장비를 보급하려는 기업의 자료를 편집했지만 땅, 흙, 생태계와 문화, 그리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숱한 생물을 철저히 배제했다.

인간은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말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인데, 생태적 동물이다. 생태계에 뒤늦게 동참한 사람은 땅과 흙을 떠나면 생존할 수 없다. 가혹한 재난을 부르는 기후위기는 탐욕스러운 화석연료 소비가 땅과 하늘과 바다의 생태계를 파국으로 내몰았기 때문인데, 생태계를 배제하는 교만한 대응으로 기후위기가 극복될까? 디지털로 규격화한 농작물과 식품으로 모든 인류가 행복에 겨울 수 있을까?

땅을 물질로 파악하는 디지털은 기후위기 대응일 수 없다. 미래 세대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다. 코로나19를 초대한 화학농업과 공장식 축산을 예찬하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달라야 한다. 땅과 흙이 살아난 마을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웃에 생태계는 물론 선조와 미래 세대의 삶과 문화가 포함돼야 인류세는 파국을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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