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377)는 ‘의학의 아버지’ 혹은 ‘의성(醫聖)’이라고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가 말한 의료의 윤리적 지침으로, BC 5~4세기 사이에 기록됐다고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상황에 맞도록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수정한 ‘제네바 선언’이 일반적으로 낭독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쓰이는 선서문도 사실은 제네바 선언문이다. 제네바 선언은 194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세계의학협회 총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1968년 최종적으로 완성돼 현재에 이른다. 

일찍이 아인슈타인, 버틀란트 러셀 등과 반핵운동단체 ‘퍼그워시’를 만들어 199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영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로트블렛(Joseph Rotblat, 1908~2005)박사는 대학에서 배우거나 과학 등의 전문지식을 몸에 익힌 사람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졸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을 닦은 사람은 그 지식을 자신의 윤리와 책임에 기반해 인류와 사회를 위해 바르게 쓰겠다고 선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핵무기를 낳은 ‘윤리 없는 과학’에 대한 통한의 마음이 담겼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도 "지적 직업의 훈련을 받은 모든 사람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의료계 종사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던 관념에 제동을 걸고 모든 전문 지식인에게 적용할 것을 주장한 획기적인 말이었다. 자신의 연구와 일이 사회의 가치와 깊이 연결됨을 인식시켜 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왜냐면 학생들의 윤리 훈련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단순한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가결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모든 학문 분야에서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전문적 지식을 가르쳐 준 사람을 부모처럼 존경한다는 서약이기 때문이다. 스승이 늘 제자를 존중해야 하듯이 제자는 늘 스승을 존경해야 한다는 원리다. 

둘째, 모든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예술과 과학 등 모든 분야의 실천가가 전부 똑같이 이 원칙에 기반해 서약한다면 그때는 세계평화가 실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교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인가? 그것은 인간의 자질에 커다란 토대를 함양하는 교육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은 더욱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힘이다. 자신을 더욱 인간답게 변혁하기 위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우리가 배우는 학문의 지식이 곧 지혜는 아니다. 

지식을 능숙하게 다루는 지혜가 있어야만 풍부한 가치를 낳게 된다. 바로 지식과 아울러 지혜를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그것은 인생과 사회에 지속적인 가치를 견지하는 힘이 될 것이다. 

교육은 지식의 전수가 목적이 아니다. 학습법을 지도해야 한다. 단편적인 지식을 가르치거나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힘으로 지식을 얻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지식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를 줘야 한다. 더불어 성숙한 인격체인 바람직한 민주시민을 육성해야 한다. 여기엔 건전한 생명과 인격을 함양하는 전인교육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대인 현대는 세계시민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전쟁 등 폭력이 초래하는 황폐화와 끔찍한 잔혹성을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 문화, 특히 자신들과 가장 동떨어진 다른 문화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교육을 해야 한다. 

여기엔 생명의 존엄성과 평등사상이 근본 기준이어야 한다. 또한 평생교육을 지향하는 현대교육은 삶의 문제 해결의 근원적인 힘이 돼야 한다. 

이런 막중한 교육의 역할은 바로 교육 전문가인 교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견지하며 교육자의 윤리에 기반해 인류애를 기르는 교육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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