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내 꿈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실존적인 질문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물음이지만 우리는 매번 그런 질문에 답을 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청소년기엔 이런 질문에 많은 시간을 쏟고, 취업의 문턱에서 또 한 번 깊은 고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지만, 어느 정도 결정된 이후에는 감내해야 하는 생계와 지켜야 할 가족을 위해 살아간다. 운이 좋게도 생계를 위한 밥벌이가 이상적인 꿈과 이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자신의 꿈과는 일정 부분 타협한 선에서 합의한 현실을 이어간다. 그러다 삶의 무게가 턱까지 차올랐을 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받았을 때, 잊고 지내던 본질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은 가정주부 버나뎃이 진짜 나는 누구인지 묻고 또 묻는 과정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5세 외동딸 ‘비’를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 버나뎃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우선 애지중지 키운 딸은 건강하고, 예의 바르며,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었고 남편 또한 성공한 프로그래머이자 사업가였다. 경제적으로도 윤택했고, 속상한 일도 딱히 없는 삶이라 누가 봐도 무난하다 할만 했다. 하지만 버나뎃은 늘 불안하고 불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우선 그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기본적인 예의만 지키는 선에서 살아가고 싶었지만 다른 학부모들은 이런 버나뎃을 특이하게 생각하며 수근거렸다. 때문에 버나뎃은 외출을 극도로 꺼렸다. 쇼핑은 온라인을 통해 해결했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만줄라’라는 인도 출신의 비서를 고용해 온라인으로 대화하며 필요한 일들을 해결했다.

 그러던 중 딸 비가 고등학교 입학 전 남극 여행을 제안한다. 인생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딸의 제안을 거부하긴 힘들었던 버나뎃은 여행을 약속한 이후 더 큰 불안과 공포에 빠졌다. 우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크루즈를 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일까. 원래도 독특하고 다소 까다로운 그녀의 행동이 더욱 이상하게 비쳐졌고, 급기야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에 앞서 정신병원 입원을 제안한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버나뎃은 그 의견에 따를 수가 없었다. 급기야 버나뎃은 아무도 모르게 먼저 남극 여행을 떠나 버린다. 그렇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간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면서 버나뎃은 잊고 있던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2020년 개봉한 이 영화는 2012년 출판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된 작품이다. 원작 소설은 발매 후 84주 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버나뎃은 소중한 딸을 키우며 행복을 느꼈지만 결혼 전 재능을 보였던 건축가의 길은 접어야 했다. 이후 2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버나뎃은 자기 자신이 아닌 엄마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성격 이상과 사람들과 갈등도 겪게 된다. 버나뎃이 불안정한 요인을 찬찬히 알아가려 하기보다는 정신과 치료만이 답이라는 결론은 그녀를 더욱 고립시켰다. 이 영화는 소설의 내용을 온전하게 다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 소통의 중요성과 나를 찾아가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정서로 풀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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