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이강동

오랜 기간 교류가 끊긴 조선에 교류와 침탈의 양면 정책을 가지고 있던 일본 정부는 부산으로 대표단을 보내 조선 정부에 교류를 제의한다. 수 년간 몇 차례의 교류 제의에 조선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1873년 10월 일본 정부 각료들이 모여 조선 침탈의 정한론 논의를 한다. 이런 내용이 메이지 일왕에게 보고되자 일왕은 정한론 금지령을 내린다. 하지만 금지령에도 조용하게 여염처럼 이토·산조오·니시고우·시마즈·이와쿠라 등의 각료들에 의해 정한론은 이어지고 있었다. 

 1875년 일본 정부는 표면으로는 조선과 중국 근해의 항로 연구 임무라고 하지만 조선과 중국의 군사력을 탐색하고자 일본 함대들을 파견한다. 3월에는 중국 산동반도를 침범해 치열한 교전 끝에 퇴각 당한다. 9월 21일 인천 바다로 들어온 일본 함대 운양호는 강화로 올라가 강화 초지 제3포대와의 교전 끝에 점령하게 된다. 다음 날인 22일 작약도 해역에서도 영종성과의 교전으로 영종성도 함락 당한다. 병서·기장·무기류·악기 등의 노획물들을 가득 싣고 운양호는 일본 나가사키로 귀항하고, 일본 정부에 보고된다. 이후 군사력의 우위를 앞세워 조선 왕정에 강력하게 교류를 요구하고 나선다. 1876년 한일수호조약(강화도 조약)이 체결된다. 강화도성 서문 안에 있었던 연무당에서 2월 26일 조인식을 갖는다. 

 체결에 의한 법률적 근거를 내세워 일본은 인천 제물포에 항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다. 개항 후의 관리는 일본 정부가 맡는 것이었다. 통상 무역의 운영권, 일본인 거류지 선택 등 각종 권리를 가지게 되는 불평등 조약이었다. 일본 정부는 외무대신 하나부사를 조선 주재 초대 영사로 보내 총괄 책임을 맡긴다. 하나부사는 서해안 지역 인천·아산·군산·목포로 찾아 다니며 면밀한 조사를 했다. 최종적으로 서울과 가까이 있으며 중국과의 교역에도 편리성이 좋은 인천을 선정하고 항구 조성 계획을 세운다. 하나부사가 선택한 항구 부지는 동구 만석동~중구 해안동에 이르는 제물포 중심지였다. 하나부사는 임오군란 때 일본으로 탈출하려고 한강을 건너 인천으로 오면서 서울과 인천시민들에 의해 죽창 등으로 공격 받고 일행 수명이 죽는 일도 있었다. 겨우 피신해 동구 만석동 월미도에서 어선을 탈취해 일본으로 탈출했다가 일본군을 이끌고 다시 인천에 상륙한 정한론 주장 일행들의 일원이었던 골수 분자였다.

 일본에 의해 1881년 개항장이 지정되고 항구가 조성된다는 소식이 전국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에 전국 각지 주민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인천·서울·경기 등 각 지역 주민 대표들이 서울에 모인다. 1881년 1월 2일 전국 각 지역 주민 대표들의 반대 목소리도 있었지만 일본 뜻대로 1883년 개항됐다. 

 이같이 일본 정부가 정책용어로 사용하고 지정한 개항장 명칭을 거리낌없이 현재도 국가기관인 문화재청과 인천에서 사용하고 있다. 인천시에서 내항과 주변을 해양·문화·관광의 거점도시로 조성하는 사업 명칭으로 개항장을 사용하고 있다. 개항장 주변을 창조도시 재생사업으로 만석고가도로 등을 철거하고 새롭게 도시 모습을 바꾼다는 참신한 계획이다. 지역주민들이 반가워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개항장이라는 사업 명칭은 대표적 일제 잔재라 마음에 걸린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데 주도적이어야 하는 인천시의 사업 명칭이 일제 잔재라 더욱 그렇다. 

 중구 지역에서도 북성포구와 북성포대에서 연유한 북성동과 송월동이 통합되면서 고유 지명 북성동은 사라지고 개항동으로 지난해 7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건축물에는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명칭을 달고 보존에 나서고 있으면서 일본인과 관련 있는 마을 지명에는 가차 없이 일제 잔재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인천지역 마을 지명 중 일제 잔재 지명을 찾아내 여론의 심판대에 오르게 하는 단체가 있어 보인다. 개항장·개항로·개항동·개항장문화축제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역사와 함께하면서 문호가 활짝 개방돼 있던 인천 바다에 일본 정부가 1881년 정책용어로 사용했던 개항장 명칭은 대표적인 일제 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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