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요 며칠 사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벌어진 한복 논란과 편파 판정으로 더 불거진 ‘혐중(嫌中)’이 온·오프라인에서 들끓는다.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한국 사회에 혐중이 점점 더 심각하게 팽배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막무가내식 혐오의 대부분은 중국에 대한 무지 혹은 무시가 자아낸 결과이다.

많은 이들이 정서적 반감에 기댄 ‘혐중’을 ‘반중(反中)’과 혼동한다. 혐중 아닌 반중이 때로는 정말 필요하다. 반중은 단순한 구호나 맹목적 배타가 아니다. 반중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중(知中)’이 바탕이 돼야 제대로 된 반중이 가능하다. 

혐오는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할 뿐이며, 상대를 제압할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우는 데 방해만 된다. 백번 양보해 혐오 자체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일단 접어 두자. 그래,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다. 싫으면 안 보는 게 최선일 텐데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좋든 싫든 중국은 현실적으로 맞대고 살아야 하는 이웃인 동시에,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말 그대로 대국이다. 이런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상대하고 잘 이용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다.

‘조선인’은 ‘재외동포’ 중 ‘재중국동포’의 옛 표현이다. 사실 청나라 때부터, 장제스의 중화민국 시절에는 ‘한민(韓民)’, ‘한교(韓僑)’라고 불렸지만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조선인’으로 불리게 됐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중국 내의 소수민족들을 전부 통제하기로 결정하고 이들을 민족(民族) 단위로 구분·관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1950년에 시작된 ‘민족식별공작’ 제1단계부터 중국 내 조선인들을 조선족(朝鮮族)으로 묶어 버렸다. 이후에 중국계 조선인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조선인을 지칭하는 말로 조선민족(朝鮮民族)이라고 따로 표시했고, 조선족으로 표시한 경우는 보통 중국의 조선족을 지칭하는 표현이 됐다. ‘조선족’이라는 명칭 자체에 비하하는 의미는 본디 없었다. ‘재외동포 특별법’ 등이 제정되고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중국동포’라는 용어로 변화하려다가, 10년간 보수 정권의 반중 성향과 중국의 동북공정 등 ‘배타적인 역사 인식’으로 다시 ‘조선족’으로 부르는 것이 고착된다. 

‘조선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떨까? 아마도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범죄도시’, ‘황해’ 등에서 무지막지한 범죄자와 그 집단으로만 묘사하고 있고, 실제 생활에서도 무시하고 홀대하기 일쑤였다. 조선족을 비하의 이미지로 만들고 있는 것은 여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조선족은 국적상으로 중국인이고, 스스로도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4050세대는 오히려 한국어가 어눌하지만, 최근 MZ세대 조선족들은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인식해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특이점이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지만 미국처럼 소수민족이 스스로 ‘국가관’으로 동화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소수민족의 독립을 허용하는 순간 국가가 분열된다 생각한다. 전체주의 수준의 통제를 유지하는 일당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을 말하는 게 자유롭지 않다. 현재 독립의식이 강해 강도 높은 탄압을 받고 있는 티베트족이나 위구르족의 경우를 본다면 중국 조선족이 갖는 ‘정체성’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는 대부분 풀린다. 이 지점이 최근 동계올림픽에서 대두된 ‘한복 사건’에 대한 중국의 자가당착이다. 실제 ‘독립’이나 ‘민족’을 강하게 표하거나 의식하는 것조차 ‘당’에 대한 도전으로 보면서 56개의 ‘소수민족’이라는 ‘다양성’의 레거시는 모두 차지하고 싶어 한다. 

중국은 ‘대국’이라는 자의식에서 몸부림치는 중이다. 거대한 ‘시장’이 가장 큰 무기가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본토의 정치·경제적 부침으로 정작 중국의 본토인들은 ‘정화의 원정’ 이후 아시아 각지에 정착해 ‘화교 상권’을 구축한 경제활동의 노하우를 본토에 주입해 왔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구심점이 되는 ‘중화사상’의 토대를 만들 ‘문화적 본거지’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고, 명나라와 수나라 양 제국은 그 끝이 좋지 않았으며, 거대 원나라는 몽골의 것이었다. 그래서 문화혁명 때 태동한 "정신은 죽이되 그 거죽은 가져온다"라는 ‘민족식별공작’이 승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원나라와 청나라 모두 자랑스러운 중국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확장하다 보니 티베트, 위구르, 그리고 조선족까지의 문화적 도발이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언론과 보수 진영 그리고 정부 여당의 이번 ‘한복 논란’에 대한 기저의 비판의식은 당연하지만, 자칫 혐오를 부추기는 선동이 될 수 있어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더 넓고 깊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좀 더 냉철하고 치밀한 ‘실리 외교’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혐오하고 차별해서 표는 좀 더 얻을지 몰라도 ‘리더’의 자격은 상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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