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춘절(春節)이라고 알려진 중국의 새해 관습은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계승돼 온 것으로 가족·친지와의 녠예판(年夜飯:섣달그믐날 함께 모여 먹는 음식) 먹기, 춘련(春聯) 붙이기, 불꽃놀이 등의 행사를 갖는데, ‘하늘과 인류가 하나’임의 원칙을 구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춘원’으로 명명된 40일간의 춘절 기간 수억 명의 중국인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기차·버스·승용차·비행기에 몰려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할 만큼 거대한 이동이 이뤄지는 까닭은 바로 ‘화합’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데서 비롯됐다.

올해 춘절은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불과 사흘 전에 시작됐다. 인류가 상호 이해도를 높이고 긴장을 낮추며 갈등을 해결하자는 올림픽 정신으로 인류의 미래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대표적 축제이자 실천행위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세계인의 관심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개막식 행사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함께 옮기는 순서에서 우리가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장면이 등장했다. 중국 내 56개 민족 대표가 퍼포먼스를 펼칠 때 댕기머리에 흰 저고리와 분홍치마를 입은 여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네티즌과 정치권은 한국의 고유 문화를 중국의 전통 문화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문화공정’의 연속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따지고 보면 개막식에 조선족이 한복 차림으로 등장한 것 자체로 비난하거나 문제 삼을 건 없다. 중국 내 소수민족을 표현하는 차원에서 이 여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우리 문화의 전통을 지키려는 건 당연한 일이고,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장면이 등장한 것은 박수 받을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 우리가 기분 나쁘게 반응한 이유는 20여 년 전 중국에서 발해·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귀속시키려는 동북공정에 이어 10여 년 전부터는 우리 한복이 한푸에서 유래됐고, 김치의 원조는 파오차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두의 주장이 중국 내 일부 국수주의자의 과도한 호응으로 한국 내에서 반중·혐중 정서를 키우는 일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이번 논란에 대해 "중국 측에 고유한 문화에 대한 존중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한 이해 증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이런 노력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이 같은 외교적 언사와 달리 양국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서로에 대한 반감과 혐오적 발언이 날로 솟구쳐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순수한 자부심을 넘어선 중국 우월주의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도 없고, 그리 돼서도 안 될 일이다.

문화에 국경처럼 경계선은 없다. 인접 국가 간 오랜 역사와 교류를 통해 상호 주고받는 것이 문화의 속성이다. 그렇더라도 그 뿌리는 실재하는 것이며, 그 문화가 다른 나라로 흘러들어가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그 원류와 정통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터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문화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화는 상위에서 하위로 흘러가는 속성이 있다. 결국 이웃 나라의 문화를 침탈하려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 하위 문화임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아닌가. 

요즘 가뜩이나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듯한 대선 후보의 발언에 절망하는 현실이다. "사람의 손발 노동은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발언 말이다. 외국인을 경멸하는 발언은 늘 있어 왔으나 이는 공동체의 ‘룰’을 깨뜨리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뒤흔든다는 경고음에서 그쳤었으나, 근래 들어 ‘혐오 세일즈’가 대선 바람을 타고 펴져 나가는 판에 올림픽 개막식의 장면을 두고 이웃 혐오증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건 정말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모두 차분해져야 한다. 성숙한 자세로 중국의 태도를 꾸짖어야 한다. 누가 더 혐오 감정을 많이 표출하느냐에 시합하듯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분노와 격앙된 감정으로 문화 침탈을 물리칠 수 없다. 더 당당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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