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기, 따스한 햇볕, 늘 그곳에 서 있는 나무처럼 그런 존재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지만, 그것들이 없으면 우리 역시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여럿이 있을 땐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곤란을 겪고 있는 벗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귀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정채봉 시인의 ‘만남’이라는 글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인의 글에서 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요.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요.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떨어지면 던져버리니까요.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와 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요."

곰곰이 제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생선이나 꽃송이 또는 건전지나 지우개와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과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를 자문하면 저도 저런 만남의 대상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하루는 눈을 뜨면 연구실로 달려가 책장을 펼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컴퓨터에 그 내용을 필사하듯이 입력시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제별로 토막을 내어 다시 입력시킵니다. 그래서 책을 자주 사곤 합니다. 책방에 가서 직접 살 때도 있지만,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가 더 많습니다. 간혹 신문에 소개된 책을 사기도 합니다. 보통 한 번에 5권에서 10권 정도를 사는데, 책이 도착한 다음 날 새벽, 그 책들을 들고 연구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습니다.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목차를 보고 신중히 골랐는데도 불구하고 읽어 보면 저자 자신을 드러내는 책이 꽤 많습니다. 그런 책에서는 저자의 똑똑함과 성실함은 보이지만, 그 똑똑함과 성실함이 독자에게 드리는 선물이 아니라 자신을 홍보하는 것에 그치고 있어 참으로 허탈해집니다. 

 선거철이 돼 많은 정치인이 책을 내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간혹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책은 자신을 드러내는 책이 아닙니다. 누군지 모를 독자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겸손하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그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저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정채봉 시인의 말씀처럼 생선과도 같은 사람, 꽃송이 같은 사람, 건전지와 지우개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세월이 한참 지나서 되돌아보면 끝이 항상 좋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비참해지기도 하고요. 그들의 이기심에 ‘내’가 이용당했고 농락당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드니까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손수건 같은 벗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너무도 힘들어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손을 내미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이런 상상도 해 봅니다. 아내가 힘들어할 때 손수건 같은 남편이 곁에서 말 없이 지지해 주는 모습, 사업에 실패해 지인들마저 모두 떠나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벗! 이들이 있기에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을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이제부터는 ‘나’도 그들에게 손수건 같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에 이르게 됐고, 그때 늘 무덤덤하게만 바라보던 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