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 시인
문계봉 시인

요즘 전 세계적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애초 부두교 전설에서 유래한 좀비는 주술로 움직이는 시신을 뜻하는데, 영화에 좀비가 처음 등장한 건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작품이다. 당시 산 사람을 산 채로 뜯어먹고, 죽은 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이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낯선 공포로 다가왔다. 이후 좀비 영화는 공포영화의 한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모든 좀비 영화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새벽의 저주’가 나오면서 좀비 캐릭터는 한결 정교하고 다채롭게 업그레이드됐다. 

최근 한국에서도 좀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1천만 관객을 모은 ‘부산행’을 비롯해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콘텐츠 중에는 한국 좀비 영상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서양 좀비와는 다른 한국형 좀비의 탄생을 알린 드라마 ‘킹덤’, ‘스위트 홈’, 영화 ‘살아있다’, 그리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은 모두 좀비가 등장하거나 좀비물을 변주한 작품들이다. 

모든 문화예술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좀비를 소재로 한 게임, 영화, 드라마, 유튜브 콘텐츠 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장르물이자 시대상을 반영한 콘텐츠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젊은 SF 문예평론가 후지다 나오야는 자신의 저서 「좀비 사회학」에서 시대에 따른 좀비의 유형 변화와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좀비를 당대의 문화현상을 해석하는 상징의 키워드로 활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좀비를 단순히 영화 속 괴물이 아니라 당대의 지배적 경향들이 투영된 사회적·정치적 상징으로 본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에 몰두한 나머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길을 가는 사람을 우리는 스마트폰 좀비라고 부르기도 하고, 빚을 내 집을 장만한 후 대출금 갚느라 허덕이는 하우스푸어들과 이러저러한 이유로 직장을 잃거나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자본주의 좀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살아 있지만 현 사회의 지배적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된 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좀비에 투영돼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비와 좀비 영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진정한 소통이 드물어진 시대의 피로감이 만들어 낸 허구적 콘텐츠이자 상징의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 코드는 서로 다른 성격으로 동시에 작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와 권력을 장악한 이들에게 좀비는 자신들의 휘황한 자본의 왕국과 어울리지 않는, 배제와 공격의 대상으로 치환돼 읽힌다. 이때 좀비 코드의 상징성은 해고 노동자와 성소수자, 여성과 탈북인, 장애인과 저소득계층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다. 

한편, 자본의 거대 시스템에 종속된 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좀비는 상련(相憐)의 대상이자 애써 부정하고 싶은, 현재 자신들의 모습이 투영된 애증의 대상이다. 이때 자본은 다양한 방법으로 ‘좀비 랜드’ 주민들이 서로 연민하면서도 부정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갖도록 부채질하거나 싸움을 부추긴다. 이유는 명백하다. 혼란의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함으로써 그들(좀비로 코드화된 계층의 사람들)을 ‘왕국’으로부터 배제하고 구축(驅逐)하는 일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현실의 시스템에서 차용 가능하도록, 상징의 코드가 덧입혀진 좀비라는 허구는 자본이 지배하는 왕국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가장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새카맣게 몰려오는 좀비를 기관총과 화염방사기로 궤멸시켜 버리는 영화의 한 장면은 자본과 권력에 얼마나 큰 카타르시스로 다가갔을 것인가. 문득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군 헬기와 전폭기들이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크게 틀어놓은 채 마치 게임을 즐기듯 기관총과 네이팜탄으로 베트콩 마을을 초토화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것은 분명 허구가 아닌 현실이었다. 명심하라. 자본의 왕국, 짐승의 시간 속에선 언제든지 당신과 나, 모두가 좀비로 읽힐 수 있는 코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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