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미국 뉴욕 맨해튼의 오랜 랜드마크,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102층이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았지만, 송도신도시의 랜드마크로 103층 빌딩이 6·8공구에 예정돼 있다. 1929년 시공해 2년 만에 완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환갑, 진갑을 넘어 100년 역사도 넘길 텐데, 여전히 뉴욕 마천루에서 가장 유명하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1970년대 초 완공된 뒤 50년 동안 최고 높이를 양보했지만, 회복했어도 예전 명성은 퇴색했다. 경제공황으로 공간이 꽤 비었고, ‘엠티스테이트빌딩’이라는 세간의 비아냥도 받았지만, 해마다 400만을 넘나드는 관광객으로 부도를 면한 맨해튼 랜드마크는 미국 패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00층 넘는 건물은 미국보다 아시아에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고 패권이 아시아로 넘어간 건 아니다. 2007년 ‘뉴욕타임스’는 당시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중동 국가에서 세우려는 100층 이상의 건물 경쟁을 "선진국 진입에 대한 열광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분석이기보다 조롱에 가까웠다.

인천시와 경제자유구역청은 송도 6·8공구의 103층 빌딩 이름을 어떻게 정할까? 사라진 송도 갯벌에 얽힌 문화와 역사가 반영될지 알 수 없는데, 정작 151층 쌍둥이 빌딩을 한사코 요구하는 송도신도시의 일부 주민들은 가시화되는 103층 빌딩을 결국 받아들일까? 알 수 없는데, 유럽에 초고층 빌딩은 매우 드물다. 시민들은 경관을 오만하게 독점하는 건물을 꺼린다. 숲과 낮은 건물로 편안한 지평선을 볼썽사납게 거스르는 높이에 대한 불쾌감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지 않던가.

고층일수록 건물은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부를 과시하는 산유국들은 앞다퉈 500m 넘는 건물을 세웠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 높이의 건물을 과시할 태세다. 하지만 그런 건물은 막대한 에너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건설과 유지가 어렵다. 무한정으로 낭비하던 석유는 어느새 고갈이 드러났다. 2005년으로 정점을 지난 석유와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낭비는 미래 세대를 위협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초고층 건물은 이제 자랑이 아니다. 탄소중립을 서둘러야만 할 시기에 부끄러움의 상징으로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영겁의 세월 흘러내린 백두대간의 유기물이 갯벌로 쌓이고 쌓인 서해안은 리아스식이다. 바다에서 닥치는 풍상을 견딘 리아스식 해안이기에 재난에 무척 안전하다. 수많은 어패물의 산란장이요 터전인 갯벌은 우리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천혜의 어장이었다. 어패류가 지천인 인천 갯벌은 지구온난화를 효과적으로 예방하지만, 매립됐다. 이제 재난 예방은 옛일이 됐다.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 더미인 송도신도시는 지구온난화 원인을 제공했으면서 위기를 가중한다. 온실가스가 배출 없이 유지할 수 없는데도 103층 건물을 필두로 초고층 건물을 여럿 추가 하려 들지 않던가.

건물이 높을수록 그늘은 깊다. 그늘진 뒷골목의 음습한 분위기만이 아니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거론한 6411번, 강북에서 강남을 잇는 시내버스의 첫 승객들처럼 송도신도시의 휘황찬란한 건물은 수많은 노동자의 고단한 노동을 동원해야 유지할 수 있다. 건물을 출입하는 자동차는 교통사고와 혼잡을 키우고 주변 공기는 지저분해진다. 문제는 기후위기에 직면한 미래 세대다. 온실가스를 이례적으로 내뿜을 송도신도시 103층 건물은 미래 세대에게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는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전망대에 오르면 색다른 그림이 있는 티셔츠와 엽서를 기념품으로 판다. 건설노동자 10여 명이 H빔에 나란히 앉아 점심 먹는 장면인데, 랜드마크에 방점을 두는 송도신도시의 103층 건물도 전망대를 마련하겠지. 어떤 랜드마크를 기념품으로 팔까? 드넓던 갯벌은 아니겠지.

뉴욕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빈 사무실이 늘어난다고 한다. 테러가 두렵기 때문이라는데, 송도신도시의 103층 빌딩은 테러에 충분히 대비할 거라 믿자. 탄소중립이 긴박한 기후위기 시기에 재해에 안전할까? 미래 세대의 원망에 변명은 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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