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이 작가의 작품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무려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40억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인물. 오늘 소개하는 영화 ‘나일 강의 죽음’의 원작자 애거사 크리스티다.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크리스티 작품의 매력은 추리물이 주는 흥미로움과 함께 사실적인 설정과 우아한 해결 방식에 있다. 사건 발생은 기이한 모험이나 범죄자의 광기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일상에 뿌리를 둔 평범한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독자를 안락의자에 앉혀 두고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가며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는 미스터리 해결 방식은 범인 탐색의 재미를 더한다. 1937년 발표한 「나일 강의 죽음」은 작가 스스로 가장 애정하는 작품으로 언급한 베스트셀러인 만큼 극의 짜임새와 반전에 대한 언급은 사족에 불과할 것이다. 동명의 리메이크 영화가 최근 극장에 개봉된 가운데 오늘은 1978년에 관객과 만난 고전 영화를 소개한다.

영국 출신의 부유한 상속녀인 리넷은 남편 사이먼과 이집트 신혼여행에 오른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이지만 도착지마다 불청객처럼 나타나는 자클린의 등장으로 여행은 엉망이 돼 버린다. 자클린은 리넷의 친구이자 사이먼의 전 약혼녀로, 가장 가까운 두 사람에게 동시에 버림받은 인물이다. 억울함을 참을 수 없었던 자클린은 그렇게 신혼부부를 쫓아다니며 죄책감, 괴로움, 스트레스를 안겨 줬다. 

참다못한 부부는 자클린의 눈을 피해 나일 강을 유람하는 호화 여객선에 오른다. 그러나 배 안에도 신혼부부를 달갑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승객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상속녀 리넷과 불편한 과거로 얽힌 사람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따돌렸다고 생각한 자클린마저 여객선까지 따라와 부부의 신혼여행은 여러모로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클린이 만취 상태로 흥분한 나머지 사이먼의 다리에 총을 쏘는 일이 발생하고, 본인의 우발적인 행동에 당황한 자클린도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뜻밖에도 리넷이 객실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고 휴가를 즐기던 명탐정 포와로의 수사가 시작된다. 진정제를 맞고 잠이 든 유력 용의자 자클린의 알리바이가 명확한 가운데 11명 승객 전원을 심문하며 포와로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거나 이를 모티브로 한 영상이 100여 편에 달할 만큼 그녀의 작품은 흥행 보증수표로 통한다. 2월 둘째 주에 개봉한 ‘나일 강의 죽음’도 국내외에서 준수한 흥행 성적을 보여 주고 있다. 오래전에 발표된 소설인 만큼 범인의 정체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영화는 여전히 눈을 뗄 수 없는 몰입의 세계로 대중을 안내한다. "모든 살인자는 다른 어떤 이에겐 오랜 친구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크리스티 작품 속의 범인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이 우연한 일을 계기로 폭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건 발생의 원인과 범인을 추적하는 가운데 드러난 인간 본성과 그 내면을 꿰뚫는 작가의 통찰력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인기와 매력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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