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달리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전의 삶에서 그 이후의 삶으로 변하는 지점이 ‘변곡점’입니다. 저 역시도 돌이켜보면 20대에 품었던 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꿈의 방향이 바뀐 변곡점에는 어김없이 해결하기 힘든 ‘고통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처절한 몸부림 끝에 장애물을 극복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그 고통의 터널을 벗어나게 된 힘겨웠던 과정이 저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켰다는 것을요. 

빈민교육을 주창했던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에 관한 자료들을 찾다가 우연히 그의 어린 시절 일화를 접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돈보다는 환자의 건강을 우선시했던 의사였고, 어머니는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리면서도 보육원을 도울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목사였습니다. 비교적 곧은 성품을 지닐 만큼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겁니다. 그가 어렸을 때 나눈 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삶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선을 배울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병약하고 수줍음이 많았던 소년 페스탈로치는 친구들에게 겁쟁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화를 내지도 못하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지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했습니다. 산길은 조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새 소리와 바람 소리가 어린 페스탈로치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했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가 좋아요. 마음이 아주 편하거든요." 생각이 깊은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도 그렇구나. 너와 함께 있어서 그런가 봐." 

이렇게 덕담을 나누다 보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이젠 서둘러 가야만 했습니다. 산길을 벗어날 때쯤 널찍한 개울을 만났습니다. 페스탈로치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업고 건널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혼자 먼저 건너가신 할아버지는 냉정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스스로 건너와야 한다. 어서 건너오거라. 무서울 거 없단다.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가 힘껏 달려오면 돼." 어린 페스탈로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손자가 건너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울었는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할 수 없이 혼자서 건너야 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 끝에 무사히 건넜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드디어 해냈어요." 할아버지 역시 기뻐하면서 사랑스러운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오늘 일을 잘 기억해야 한단다. 앞으로 네 앞에 나타날 수많은 개울들 역시도 지금처럼 잘 뛰어넘을 수 있을 거야. 뭐든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거든." 

소년 페스탈로치가 그토록 넓어 보이는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울고 있는 장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던 할아버지의 냉정함에 실망도 컸을 겁니다. 그렇다고 한없이 그렇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하는 수 없이 개울을 건너기로 작심하고 시도해 봅니다. 몇 차례 실패했지만 결국 건넙니다. 이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바로 이 깨달음을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주고 싶었던 겁니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즉 고통스러운 일을 마주했을 때가 곧 인생의 ‘변곡점’입니다. 변곡점에 이르렀을 때는 어린 페스탈로치처럼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장애물을 뛰어넘느냐,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아 울면서 세상을 원망하느냐의 두 개의 길만이 존재합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고통스러운 일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내 인생의 변곡점임을 알고 있다면, 그 고통이 선한 결과로 이어지게끔 나를 변화시키고 단련시키는 계기로 삼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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