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기나긴 대선(大選) 유세(遊說) 기간이었다. 유권자들의 마음도 착잡하리라 사료된다. 선거 때만 되면 우리를 허탈하게 하는 것이 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면 타 당 후보와 그 지지자들 모두는 적이 된다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도 있다. 말로만 외치는 국민 통합이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라 할 수 있는 다수결의 원리에 승복할 줄 모르는, 성숙되지 못한 일부 시민의 그릇된 자세도 문제다. 

 누차 대통령선거를 치른 우리다. 하지만 외신의 시각에서는, 대한민국에서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70여 년 전 푸른 눈의 한 서방 기자가 비하 표현한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기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투표 하루 전인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모습이 입증하고 있다.

 하늘을 두려워하고(畏天) 국민을 두려워하라(畏民) 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대선 후보들이다. 하지만 당선 가도를 달리면서 수단은 불법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를 목도한 유권자들이다. 한 나라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 수준이다. 한 나라 국민 수준이 곧 그 나라 정치 수준이라는 역도 성립된다. 

 여야 각 진영의 지난 대선 운동기간을 되돌아보자. 오로지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을 옳다고 내세우는 억지 고집만으로 점철돼 왔다. 어느 진영 가릴 것 없이 하나같이 아사리판이었다. ‘아사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해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였다. 당초의 좋은 뜻의 어의(語義)가 의미변절해 몹시 어지러운 정치판을 일컫는 ‘난장판’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아사리판에서는 진실과 어떠한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먼 데서 찾을 필요도 없다. 부끄럽게도 이러한 판이 펼쳐지고 있는 현주소가 바로 우리의 정치판이다. 서로 자기 진영만이 정의라 한다. 여기서 민주질서는 실종된 지 오래다.

 싸움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사리판에서는 상대 진영이 없다. 자기 진영이 내세우는 주의·주장에 반하는 것은 모두가 그릇된 논리이고 이단(異端)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지켜져야 할 스워드 라인(Sword Line)은 여지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어찌하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진실로 실현할 수 있는 후보에게 유권자는 한 표의 투표권을 행사, 의사표시할 것이다.

 우리의 경제 수준은 가히 기적적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천 달러를 넘어섰다는 발표도 있다. 인구 5천만 명 국가에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을 칭하는 ‘5030 클럽 국가’임에 자부심도 갖는 국민들이다. 이러한 세계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최종 선택일이 내일이다. 

 ‘현난(賢難)’이라는 말이 있다. ‘현명한 사람을 얻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 후한 말 왕부(王符)는 「잠부론(潛夫論)」에서 "세상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어진 현명한 이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개 한 마리가 뭔가를 보고 짖으면 수많은 개들이 그 소리만 듣고서 따라 짖듯이, 한 사람이 거짓말을 퍼뜨리면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처럼 믿고서 떠들어댄다. 세상의 이 같은 병폐는 참으로 오래된 것이다(一犬吠形 百犬吠聲 一人傳虛 萬人傳實 世之疾 此因久矣哉)."

 우리 헌법은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천명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모쪼록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내세웠던 진실과 거짓 사이를 냉철히 판단하기 바란다. 대한민국 앞날의 운명이 유권자의 혜안(慧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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