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프리츠 랑, 더글러스 서크, 막스 오퓔스, 빌리 와일더로 대표되는 유럽의 감독들은 전운을 피해 미국으로 향한다. 이들 덕분에 1940∼50년대 할리우드는 장르적으로나 스타일적으로 풍요로운 시기를 맞이한다. 오토 프레밍거 또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국적의 감독으로 미국으로 망명해 황금기 할리우드를 이끌었다. 할리우드 시스템과의 잦은 충돌로 인해 1950년대부터 독자적인 제작사를 설립해 영화 제작까지 겸한 오토 프레밍거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소재를 끄집어내 영상화하는 데 탁월했다. 이로 인해 당시에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흥행을 추구하는 감독으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1960년에 이르러서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재평가됐다. ‘버니 레이크의 실종(1965)’은 미스터리 영화로 감독의 원숙미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미국인 앤 레이크는 4살 된 딸 버니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다. 미혼모인 앤은 먼저 정착한 오빠 스티븐의 도움으로 딸아이가 다닐 유치원을 결정하고, 집 계약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버니의 첫 등원 날, 유치원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던 앤은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에게 자신의 딸 버니가 입학실에 홀로 있음을 전하고 이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자리를 뜬다. 하원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도착한 앤은 딸 버니를 기다리지만 만날 수 없었다. 유치원 직원과 선생님들도 버니라는 신입생을 본 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불안감을 느낀 앤은 오전에 만난 요리사를 찾아봤으나 갑작스럽게 퇴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결국 실종으로 간주돼 경찰이 투입되지만 버니의 흔적은 유치원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집에서도 버니의 용품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앤은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귀중품 대신 아이의 물건만 훔쳐 달아난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이에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장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앤과 스티븐 남매가 유년시절 버니라는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 함께 놀곤 했다는 진술이 더해지며 의혹은 증폭된다.

 영화 ‘버니 레이크의 실종’은 작가 메리엄 모들이 1957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심리물이다. 도착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낯선 나라에서 딸을 잃어버린 젊은 어머니의 당혹감에 초점을 맞춘 초반의 드라마는 아이를 반드시 찾길 바라는 절박한 심정을 관객에게도 불어넣는다. 그러나 아이의 실존 여부 자체에 의구심이 생기면서 영화는 지금껏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특히 기이해 보일 만큼 사이가 각별한 앤과 스티븐 남매의 모습과 그들의 과거 행적은 그런 의심을 키운다. 결국 실종이 아닌 망상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믿음이 커질수록 영화의 섬뜩한 기운도 강화된다.

 관객과 등장인물 모두를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고 가는 이 영화는 오토 프레밍거의 깔끔하면서도 고도로 계산된 연출력으로 극대화된다. 프레밍거 감독은 배우의 연기를 최상으로 끌어내는 능력으로도 유명한데, ‘버니 레이크의 실종’에서도 모든 배우들이 영화의 긴장감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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