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그 어디를 뒤져 봐도 뜻이나 유래 등은 제각각이어서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캐나다의 한 작가가 1968년을 전후해 태어난 신세대를 가리키며 처음 사용했다는 정도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찾는다.

해당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198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불경기가 X세대의 미래를 어둡게 했고, 그 공포와 불안으로 인해 미래는 물론 자신마저도 잊은 세대를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어둡고, 불안하고, 안쓰러운.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반항과 개성을 대변하는 단어로 사용했고, 이는 주로 광고나 기사에서 많이 가져다 활용했다고 기억한다.

기억 속 X세대는 재기발랄하지만 세상에 맞서 두려움을 모르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거리낌 없는, 남들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관철시키는, 뭔가 튀는 세대를 일컫는 단어였다.

짧은 광고 영상 속 X세대들은 그랬다. 편한 복장으로 회사에 출근했고, 정확한 기억은 어렵지만 삭발에 가까운 머리에 껌을 씹으며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사실, 그만한 오기와 객기를 부리는, 부려도 되는 나이는 맞지만(잘려도 다른 곳 취직 가능한) 실상은 달랐다. 상사들의 잔소리와 심하게는 구박, 모욕도 받아내며 견뎠다. 인내력이 강해서가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고,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했다. 아니, 하면 안 됐다.

그렇게 인내력이 길러지고, 자존심에 굳은살이 박혀 어떤 상황에도 통증을 덜 느낄 즈음 X세대는 가정을 이뤘고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 더 참아야 했다.

지금은 그야말로 X세대 이전의 어르신들과 MZ세대 사이에 끼인 불쌍한 세대일 뿐. 위로는 여전한 어르신들의 잔소리와 업무 지시, 요구, 압박이 여전한데 아래로는 할 말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 해내고야 마는 MZ세대들 눈치도 봐야 한다.

세월 지나면 군대에서도 병장 진급해 세상 편한 날이 오는데, X세대는 언제쯤 대접 받고 마음이라도 좀 편해질는지.

조금 더 힘내 살아내다 보면 좋은 날 오지 않겠는가. 안쓰러운 우리 X세대여. 서로를 이해하는 같은 세대가 분명 존재하니 함께 힘내자고 마음 전하며 주문을 걸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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