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글을 읽고 쓰는 일이 본업이니 스트레스가 없을 거라고 지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한 문장을 써 놓고 다음 글을 이어가지 못해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지낼 때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난관에 봉착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때도 있으며, 가까운 벗이나 동료들과의 오해로 인해 갈등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항변하고 싶지만 더 깊은 갈등을 초래할지도 몰라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때면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해도 말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그때 저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겐 그런 존재가 있을까? 있다면 몇 명이나 될까?"라는 호기심이 생겨 휴대전화 속 주소록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놀랐습니다. "나 힘들어!"라고 전화했을 때 그 즉시 달려 나올 것 같은 사람이 한두 사람 정도였습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나는 당신입니다」(안도현 저)에서 저자는 이렇게 조언해 주고 있었습니다.

"진돗개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아서 어릴 때는 무척 오만하다고 한다. 녀석의 버릇을 바로잡으려면 그 녀석 옆에 똥개 한 마리를 같이 키워야 한다. 세상은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똥개 친구에게서 배운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리한 개라도 일정한 사회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것은 진돗개뿐만 아니라 똥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친구란 그렇게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사이다. 아이들이 친구가 부디 많기를 소망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 말이다."

그랬습니다. 제게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돗개처럼 제가 오만했었습니다. 늘 저의 일을 최우선으로 여겼고, 일과 연관된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제 휴대전화 속 주소록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겁니다. 

저자의 또 다른 산문집인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에서 저자는 제가 깨달아야 할 삶의 이치를 말해 줬습니다.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낚싯대를 가진 인간과 카메라를 가진 인간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곧잘 용기를 내지만 낯선 어린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는 데는 인색하다. 산다는 것은 정말로 내가 나를 이끌고 가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은 동행이다."

낚싯대를 가진 인간은 ‘나’를 위해 ‘너’를 잡지만, 카메라를 가진 인간은 ‘너’의 매력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너에게 자존감을 주고 그 대신 자신은 기쁨과 행복을 선사받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낚싯대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왔으니 당연히 제가 울고 있을 때 이유도 묻지 않고 달려 나올 친구가 적을 수밖에요.

아름다운 동행이 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만이 아닌 그가 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원칙, 즉 배려의 원칙이 그것입니다. 적절한 사례가 「성공하는 사람은 화술이 다르다」(김양호 저)에 나옵니다.

영국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치고 돌아오자 여왕은 승전축하연을 베풀었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손 씻을 물이 담긴 그릇이 나왔는데, 시골 출신인 한 병사가 그 물을 마셨습니다. 모두 당황하고 있을 때 장군이 나섰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전쟁에서 용맹스럽게 싸워 이긴 저 병사를 본받아 우리 모두 이 그릇에 담긴 물로 축배를 듭시다." 그러고는 모두가 그 물을 들이켰습니다. 

결례를 저지른 병사를 무식하다며 꾸짖는 것이 아니라 당황한 그를 배려하는 장군의 외침에 그는 감동했을 겁니다. 만약 장군이 외롭고 힘들어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 병사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즉시 장군에게 달려갔을 겁니다. 주소록에 입력된 이름들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이제부터는 아픔을 겪는 벗들에게 먼저 달려가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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