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 문학동네 / 1만4천400원

이 책은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이자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의 뭉클한 성장기를 담은 에세이다. 

여느 미국 엄마들과는 다른 자신의 한국인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은 뮤지션의 길을 걸으며 엄마와 점점 더 멀어진다. 한 살짜리 아기를 데리고 한국인이라곤 찾을 수 없던 미국 오리건주 유진으로 이민 온 엄마는 딸을 엄하게 키운다. 어린 자우너가 보기에 미국인 엄마들은 자식에게 결정할 자유를 주고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듯했지만, 자신의 엄마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딸을 최상의 버전으로 만드는 데 잔소리를 아끼지 않을 뿐이었다. 딸의 외모, 화장, 옷차림, 공부 등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엄마. 다치기라도 하면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며 흉터 걱정부터 했다. 자우너는 엄마의 그런 엄하고 매정한 말들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작가가 25세 때 엄마는 암 투병 끝에 죽음에 이르고 만다. 어렸을 적부터 한국 문화를 접하게 해 준 엄마를 떠나보내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마저 희미해져 감을 느끼던 어느 날, 작가는 한인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먹다 엄마와의 생생한 추억을 되찾는다.

책 제목에도 있는 H마트는 한국계 미국인에게 ‘고향의 맛’을 찾게 해 주는 보물창고와도 같다. 엄마를 잃고 찾아간 그곳에서, 자우너는 딸과 함께 해물짬뽕을 먹는 할머니를 보고 울컥한다. H마트에서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비빔밥에 고추장 많이 넣지 말라던 엄마의 잔소리도, 달콤한 짱구 과자를 손가락에 끼고 흔들던 엄마의 모습도, 엄마와 내가 베어 물던 동그란 뻥튀기의 추억도 이곳에선 생생하기만 하다. 그렇게 H마트에서 자우너는 엄마가 미각에 강렬하게 새긴 맛을 되찾으며 위안을 얻고 회복해 나간다.

출간 즉시 미국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2021년 뉴욕타임스, NPR 같은 언론매체와 아마존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버락 오바마 추천도서에 꼽히기도 했다.  

천 개의 우주

앤서니 애브니 / 추수밭 / 1만4천400원

우리가 흔히 접했던 신화들의 범위를 넘어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22가지 창조 이야기가 있다. 북미부터 남미, 아프리카, 폴리네시아, 오세아니아, 서아시아, 동아시아까지 방대한 지역을 훑으며 고대 문명의 기원을 발굴하고 다양한 원주민들이 전해 온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그리스, 바빌로니아, 북유럽 신화가 위대한 신들의 스펙터클한 세대 간 권력 다툼을 보여 주는 반면 안데스산맥의 잉카족, 북아메리카의 틀링깃족, 메소아메리카의 아즈텍족은 가난하거나 평범한 신들이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아프리카 만데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은 조그마한 왕바랭이 씨앗에서 탄생하고, 나바호족의 창조 이야기에는 사람과 동물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가리키는 ‘곤충 인간’, ‘제비 인간’ 등이 신비롭게 등장한다.

 책은 창조 신화가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던 인간들이 마주한 기후, 지형, 자연재해 등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하며 신화적 상상력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림들

SUN 도슨트 / 나무의마음 / 1만7천820원

 이 책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작품들 중에서도 ‘MoMA에 가면 반드시 봐야 할 대표 작품들’을 미국 현지의 그림해설가가 직접 엄선해 친절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1천700여 회 도슨트를 진행한 전문 그림해설가답게 독자들이 마치 미술관 현장에서 직접 작품 설명을 듣는 듯 쉽고 생생하게 스토리텔링을 곁들여 작품 해설을 한다.

 빈센트 반 고흐에서 장 미셸 바스키아까지 이곳 미술관에서 소장하는 대표 작품은 물론이고, 소장 작품은 아니지만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작품들도 함께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특히 기존에 작가와 작품 해설 중심이던 내용 전개에서 벗어나 MoMA가 작품을 소장하게 된 배경을 포함해 미술시장에서 작품의 가치와 판매가 등등 독자들이 평소 궁금해했지만 어디에서도 쉽게 듣지 못했던 내용까지 세심하게 담아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한국 화가로서는 최초로 1957년 MoMA에 작품이 전시된 이중섭과 MoMA의 역사를 숫자로 정리한 특별부록도 눈길을 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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