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사람이 두 번 살 수 있다면 두 번째 삶은 그 이전 삶과는 무척 다를 겁니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되고, 후회하며 슬퍼할 테니까요. 그래서 살아만 날 수 있다면 과거와는 달리 살겠다고 다짐하겠지요. 죽음에 대한 사색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 사색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성 이야기 111가지」(박민호 저)에 유명 소설가의 일화가 나옵니다.

38세의 사형수인 그는 기둥에 묶입니다. "사형 집행 5분 전!"이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살아있는 시간은 단 5분밖에 없습니다. 그는 5분을 쪼개어 쓰기로 합니다. 2분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데 쓰고,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데 2분, 그리고 남은 1분은 사형장 주위의 자연을 둘러보는 데 씁니다. 

그때 봤습니다. 한 줄기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그러자 수많은 잎이 마치 자신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잘 가라!"라고 말입니다. 탄환을 장전하는 "찰카닥!" 소리가 들립니다. 순간 죽음의 공포가 밀려옵니다. 마른침을 삼킵니다. 이제 이렇게 죽는 겁니다. 

그때였습니다. 말을 탄 전령이 달려오더니 사형 집행을 중지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살아났습니다. 풀려난 그는 유배지에서 깊은 명상을 하며 자기를 정리하고 마음을 닦았습니다. 그러면서 소설을 썼습니다. 사형장에서의 5분 명상이 그의 몸과 마음을 거듭나게 한 겁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과 같은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입니다. 

삶을 마감해야 하는 그 순간은 얼마나 두려울까요. 그러나 그 절망의 순간에 그는 그동안 있었는데도 보지 못했던 바람을 봤고,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는 잎들의 손짓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곁에 늘 있었는데도 보지 못하고 살았던 자신의 민낯을 봤던 겁니다. 그 깨달음이 그의 미래의 삶을 아름답게 바꿔 놓았습니다. 위대한 소설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겁니다. 

죽음 앞에서 마주했던 고통과 두려움이 곧 마법의 거울이었던 셈입니다. 그때 자신이 그동안 추구해 왔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알았습니다.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죽음의 순간에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바람과 구름과 나뭇잎들을 사랑해야지, 벗들과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 돈과 권력과 명예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라는 생각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두려움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죽음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 죽음을 상상해 보는 것은 불편한 일이겠지만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현재의 삶을 새롭게 이끌어 주기 때문이죠.

두려움이라는 고통을 ‘어둠’으로 바꿔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어두운 밤에 산속에서 길을 잃어 마지막 남은 성냥으로 촛불을 켜면 이내 주위가 밝아지고 마음은 조금 진정됩니다. 그러나 촛불의 밝기가 미치지 않는 먼 곳은 도무지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지면 난감해집니다. 성냥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먼 곳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비집고 들어와 길을 밝혀 주기 때문이겠지요. 그때 내려오면 됩니다. 어둠이 길을 열어준 셈이지요.

도스토옙스키의 사례가 말해 주듯이, 어둠이라는 고통은 이렇게 우리에게 닫힌 문을 열게 하고 자신의 민낯을 보게 해 새로운 삶을 살게 하곤 합니다. 이제 우리도 때로는 "내가 죽기 5분 전이라면 나는 어떤 회한에 잠길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사색해 보면 어떨까요? 그때 그동안 보지 못했고 시시하다고 느낀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찾은 새로운 삶이 행복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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