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 시인
문계봉 시인

프랑스 철학가 알랭(Alain)은 자신의 저서 「행복론」에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건 타인에 대한 의무이며, 행복해지려는 맹세보다 더 심오한 건 없다"라고 말하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권태와 슬픔과 불행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없으며, 남녀를 막론하고 행복이란 가장 아름답고 기분 좋은 선물이라는 걸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알랭이 말하고자 한 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행복을 강조한 것은 절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내가 행복해야 가족, 애인, 친구 등 내가(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남의 것을 빼앗아 내 몫을 채우는 그런 이기적 행복은 경계해야 할 테지만,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우선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건 슬픔을 갈무리하는 방식과도 관계있을 겁니다.

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슬픔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겠지요. 

엄청난 이타심이 필요한 게 아니고 그것은 상정(常情)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웃게 하려면 반드시 내가 행복해야 하니, 행복은 타인을 위한 의무라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지금 우리는 미증유의 고난 앞에서 오래도록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소원해지고, 소상공인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며, 학생들은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운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처지를 지켜보며 상련(相憐)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석 자가 된 내 코를 건사하기에도 버거운데, 어떻게 상대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동병(同病)을 앓는 상대를 지켜보는 게 그야말로 지독한 고문일 수 있는 게 요즘입니다. 

또 얼마 전에 끝난 대선의 후유증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초박빙의 대결 끝에 0.73%p라는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난 이번 선거는 승리한 쪽도 개운치 않고 패배한 쪽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형국이 돼 버린 것이지요. 

며칠 시차를 두고 선거가 치러졌다면 결과가 뒤집혔을 거라는 말도 적잖이 나옵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특히 패배한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가슴에 큰 상실의 구멍 하나씩을 지닌 채 좀처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겁니다. 그 상실의 아픔이 메워지려면 만만찮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안타깝지만 비어(飛語)와 적대의 계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전한 관계와 정직한 말은 사라지고 소문과 증오만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적대와 증오를 자양으로 하루를 버팁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어떻게 갈무리하려고 이토록 서로가 불행해질 시간 속으로 폭주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무서운 기세로 확산 중인 오미크론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적대하고 오로지 자신만이 옳다고 우겨대는 이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경고 같습니다. 

배려와 이해는 없고 적대와 증오만 있는 나라, 정도(正道)는 없고 편법만 극성인 사회, 의리는 없고 이해타산만 있는 정치, 우리는 없고 너와 나만 있거나 궁극에는 너는 없고 나만 있는 현실, 슬프지만 이것이 우리의 민낯입니다. 

이러한 때에 알랭이 말한 ‘행복론’을 새삼 떠올려 봅니다.

그는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이 공기 속에 불행과 권태와 절망 등이 잔뜩 들어 있으니, 우리는 오염된 공기를 참고 견디는 정력적인 본보기, 즉 공공 생활을 정화하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서두에 언급했듯 "행복해지려고 맹세하는 것보다 더욱 심오한 건 없다"라고 말하는 거지요.

그래요. 우리는 무엇보다 행복해져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관용과 배려의 마음을 품고 적대의 감정, 온갖 추문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요. 의무는 본래 쉬운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힘들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표정을 상상해 봅시다. 

내 마음의 평화가 타인 또한 평화롭게 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의무입니까. 

퇴행의 여리고 성(城)은 아직 견고하고 꽃바람은 쉽게 기약할 수 없지만, 오래 기다려 온 저 아까운 ‘봄날의 시간’을 속절없이 잿빛으로 흘러가게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남은 우리의 무기는 여전히 희망, 봄을 봄다운 봄으로 만들,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희망을 마음에 품고 오늘의 현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행복의 의무’를 이행합시다.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아름다운 의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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