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실 전 인천광역시 교육위원회 의장
김실 전 인천광역시 교육위원회 의장

1980년대 부평지역에서 고등학교 3학년 졸업예정자와 재수생을 대상으로 진학지도를 하며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다. 진로·진학을 위해 학교 자체로 선생님들이 별도로 시간을 내어서 만든 대학교별 진학 사정안과 사설 교육기관에서 만든 사정안, 그동안 시행한 모의고사 성적을 비교하면서 학생별 진학하려는 대학과 학과가 어느 정도 합격 가능성이 있을 때는 그런대로 칭찬을 해 주며 합격을 바라는 격려로 원서 작성을 마무리하지만,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과 학과가 무리라고 생각될 때는 좀 더 안전선으로 하향해 지원하도록 권한다. 그래도 일부 학생은 이제까지 보아 온 희망 대학·학과에 자신이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그런대로 진로·진학지도를 받아들이면서 1차 전기 대학 원서 작성과 접수가 마무리되고 나면 곧이어 후기 대학과 전문대학 원서 작성이 기다린다. 그래도 1차 전기 대학 진학지도보다 시간과 심리적으로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입시 전쟁이 벌어지는 1월과 2월 사이는 가장 추울 때고, 학교별 겨울방학인지라 제대로 난방시설이 안 돼 당시 대학입시 진학지도 담당 선생님들의 어려움도 있었으나, 입시 열기로 추위를 그런대로 이겨 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막바지에 한숨을 돌리고 쉬고 있을 때, 찾는 전화가 있기에 통화를 해 보니 10여 년 전 시내 다른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었다. 대학 진학상담을 위해 한번 찾아오겠다고 해 오라고 대답하고, 당시 그 학생의 학교생활을 더듬어 생각하게 됐다. 1970년대 당시는 생활용품이 부족해 정말 어렵게 학교를 다니던 시기였는데, 몇몇 학생은 수업료를 제때 납부하지 못해 툭하면 부모님을 독촉해 수업료를 내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그런 학생 중 한 명으로, 10여 년이 지나 대학 진학상담을 위해 찾아온다니 반가우면서도 정말 찾아올까 하고 긴가민가했다. 

당시 일부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해 정규수업 후 소위 보충학습비를 받고 희망자를 대상으로 보충수업을 했다. 일부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의 보충수업비를 자신이 받는 과외비로 대체해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당시 추운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고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으로, 보충수업 등이 끝나고 어두워질 때 청소당번 학생이 청소를 하려고 하면 다른 학생들 대신 청소를 하면서 "집에 가서 대학입시 공부를 하라. 나는 대학을 안 간다"고 하며 자진해 뒷정리하는 모습이 몇 번 눈에 띄어 불러서 "대학도 안 가면서 왜 아침과 저녁 늦게까지 보충수업을 하느냐"고 묻자 "대학을 안 가도 배워야죠"라고 대답하던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0여 년 지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원하는 대학을 물으니 가까운 전문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며, 곧 결혼해 출생할 아이들에게 전문대학이라도 나와야 아버지로서 제대로 공부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후에 결혼해 자녀를 잘 가르쳐 소위 S대학에 진학시키고 법조인으로 성장시킨 뒷이야기를 듣고 학교가 현재보다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자녀에게 부모로서 공부하는 뒷모습을 보일 때 자녀가 훌륭하게 사회인으로 커 간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일 지금의 교육 풍토처럼 학생 지도에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책임을 지운다면 어려운 삶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피울 수 있을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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