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 20년 전, 운 좋게 초청 프로그램에 선정돼 미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랜드캐니언의 장엄한 광경에 잠시 넋을 잃고, 장구한 세월 계곡을 깊숙이 침식한 콜로라도강의 하류를 1930년대에 가로막은 후버댐의 위용에 놀라웠으며, 댐이 만든 185㎞ 미드호의 담수가 라스베이거스와 애리조나주의 생명수가 됐다는 안내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라스베이거스가 확장되고 애리조나가 거침없이 개발되면서 미드호의 물이 모자란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영어 의미 그대로 애리조나는 건조하다. 거친 사막에 커다란 선인장이 드문드문 서 있어 사람이 살기 부적당한데, 기온이 온화해 개발 이후 은퇴를 바라보는 부유층이 노후를 위해 모인다고 가이드는 귀띔했다. 

카리브해의 플로리다는 햇살이 뜨겁고 습하다. 맹그로브숲이 해변의 침식을 막아 주기에 저지대 습지가 보전되던 플로리다는 현재 세계적 휴양지가 됐다. 길게 펼쳐진 백사장에 연인들이 모이고 갑부들의 저택이 해변마다 화려한 요트를 자랑하는 플로리다는 요즘 명성이 위태로워졌다고 「물이 몰려온다」의 저자는 증언한다. 

100여 년 전, 가능성을 확신한 개발업자가 운하로 늪의 습기를 제거하고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린 막대한 모래로 해변을 장식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도로를 개설하고 번듯한 호텔과 리조트를 세우며 대대적으로 홍보하자 접근 꺼리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빗발치는 허리케인의 위력이 강해지면서 해수면이 오르자 곳곳이 침수된다는 게 아닌가. 관광객이 운집하는 동안 부동산 가치는 유지되겠지만,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환경운동가는 점친다. 해변의 모래사장과 도로가 뜯겨나가고 건물이 기울다 무너지면 악어와 모기가 들끓던 예전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견한다. 

구로동에서 강남을 향하는 6411번 시내버스의 첫 승객처럼, 플로리다의 화려한 명성은 노동자의 무던한 헌신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는 저지대에 침식을 심각하게 만든다. 머지않아 명성을 잃을 것으로 주장한 「물이 몰려온다」는 노동자의 거주지가 잠기는 상황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묘지의 유골을 떠다니게 만든다는 게 아닌가. 사람이 정착하기 한참 전부터 파고를 완충해 주던 갯벌을 광범위하게 매립해 화려하게 세운 송도신도시는 해수면 상승이 불러올 재해를 언제까지 외면하려는가?

서해 연안에 자리한 인천은 태풍의 영향권에서 멀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관통하자 대비에 미숙한 연수구 주민은 아파트 베란다의 유리가 깨져 나가는 걸 황망하게 봐야 했다. 기후변화만이 걱정이 아니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우리의 수많은 화력과 핵발전소가 바다로 내뿜는 온배수는 동북아의 수온을 끌어올렸다. 수온 상승은 태풍의 횟수와 위력을 키우는데, 인천과 인천 모래로 장식한 해운대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바다가 거칠어질수록 해안은 충격 완충 공간을 남겨야 마땅한데, 100층 넘는 초고층 빌딩을 구상하는 송도신도시는 부동산 가치를 위해 안전을 포기했다. 

광활했던 갯벌과 염전 일원을 송두리째 개발한 소래포구 일원은 어떤가? 기후위기는 하루 두 차례 해안으로 들고 나는 바닷물의 에너지를 높이는데 포구 일대만 남기고 아파트 단지로 변한 소래 일원은 헛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투기자본의 감언이설에 눈과 귀를 닫았다. 갯벌이 비좁아지면 물살은 더욱 거세지고 파고는 높아진다. 

건설자본의 이익에 앞장서는 시흥시가 고집 피우는 배곧대교는 온난화 위기를 부추길 게 틀림없다. 긴 세월 소래포구에서 시흥 갯고랑으로 들락이는 바닷물이 온순해 보이는 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갯벌을 메운 송도신도시와 배곧신도시는 거의 붙었다. 두 신도시를 잇겠다는 배곧대교는 기후위기가 초대할 파고를 이겨 낼 수 없다. 플로리다를 침식하는 파고는 중국 상하이와 이탈리아 베네치아만 위협할 리 없다. 배곧대교가 갯벌에 처박히는 순간, 인천에서 자본을 회수할 투기꾼 뒤에 신기루 공산에 남을 시흥과 인천시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암담하지 아니한가? 다가오는 52회 ‘지구의 날’이 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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