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임조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곧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대선은 치열한 승부였다. 누구도 당선을 장담하지 못했던 선거였다. 지방선거 역시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민주적 절차에 따른 많은 선거를 경험했고, 정치권력을 바꿔 왔다. 민주주의의 권위자인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제도화’가 일상이 된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뤄 냈다. 최소한 절차상은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의 제도화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내용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했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정치사회적 과정을 통해 확대되고 균형을 이루는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또한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가 정확하게 대의되고 있고, 우리 사회의 갈등이 모아지고 해결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가!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피해를 입지 않는 것’,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소극적 자유라고 소개한다. 아울러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적극적 자유가 보장된 상태라고 주장한다. 민주화 이후 우리 손으로 여덟 번의 대통령을 선출하고, 주기적으로 의회권력을 교체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아동, 장애인 등은 주류 세력의 외면과 갈라치기, 편견으로 소극적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의 확대는 기회의 불평등과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 ‘적극적 자유’가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우리는 1인당 GDP는 3만5천 달러를 넘어서 명실상부한 경제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불평등의 대표 지수라고 할 수 있는 지니계수는 정권의 성격에 관계없이 민주화 이후 계속 나빠지고 있다.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부를 기준으로 상위 10%와 하위 50%의 격차가 52배에 달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데도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우리 삶에 녹아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의제 민주주의가 오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부분의 선거에서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거대 양당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의 정당구조에서 한 표라도 더 많이 획득한 후보가 선출되는 방식은 당선자를 선택하지 않는 투표의 가치를 0(영)으로 만든다. 이로 인해 현재 우리의 선거제도는 국민의 정치적 선택 중 상당 부분이 대의되지 않는 치명적인 약점과 주권자는 사표 방지를 위해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는 허점을 가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대중권력으로서 기능하려면 유권자의 투표행위가 정치 엘리트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제도로는 오히려 주권자가 정치 엘리트에게 통제되는 상황이다. 주권자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기득권 양당은 굳이 지난한 정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주권자의 자유 확대, 불평등의 해소, 소수자의 정치 참여 등에 에너지를 사용할 이유가 없게 됐다. 정치권력과 분리된 주권자는 자신의 삶을 공동체에 의지하고 공동체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정글로 내몰리고 있다.

민주주의는 가치와 이념의 다원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을 때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주권자의 투표 가치가 정치권력, 다시 말해 정당의 의석 수에 모두 반영돼야 한다. 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를 고쳐 비례대표제의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시도했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한 다당제로의 전환은 이슈별 연합의 정치를 가능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주권자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가 정치 엘리트를 강제하게 될 것이다. 선거제도의 변화는 그동안 정치 엘리트들의 경쟁에서 밀려 있던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 이슈들을 전면으로 밀어올릴 것이다. 치밀한 사회 보장, 고용과 임금, 조세제도 등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 갈등을 사적 영역에 가두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 확대시켜 민주주의를 풍부화시킬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다.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