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설화는 구전되는 속성상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사회·문화적 요소와 지리적 특성 등이 가미돼 그 지방 고유의 특색을 지닌 설화로 전승되기도 하고, 지역을 벗어나 전국적인 경향을 띠며 전승되는 설화로 되기도 한다. 지역별 문화 교류가 활발한 곳일수록 전국적인 경향을 띠는 설화가 많다. 이에 반해 문화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지역은 지역 고유의 특색을 지닌 설화가 많이 전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서 지역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특수성 때문에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곳이기에 내륙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역적 특색을 지닌 설화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내륙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 지역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욱 짙게 나타난다. 

백령도는 본래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으나 광복 후 경기도 옹진군을 거쳐 1995년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편제됐다. 황해도 장연군에서는 10여㎞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인천에서는 북서쪽으로 약 190㎞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섬이다. 남북이 분단된 현재 상황에서는 남한의 내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백령도는 삼국시대부터 중국과의 해상교역에 있어 기착지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령도 앞바다에는 물살이 세고 수심이 깊어 해난사고가 잦은 곳이 있었다. 황해도 장연군의 장산곶과 백령도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이른바 인당수라고 불리던 곳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을 지나 중국으로 가는 선박들은 안전을 빌기 위한 행위들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 의식이었다. 

백령도에는 인신공희의 특성을 담은 설화들이 전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거타지 설화’와 ‘심청 설화’이다. ‘거타지 설화’는 「삼국유사」 ‘기이’ 제2편의 ‘진성여왕 거타지(眞聖女王 居陀知)’ 조에 나오는 문헌 설화이다. 중국으로 가던 사신 일행이 백령도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게 되고, 순풍을 얻기 위해 거타지가 그곳에 남겨진다. 백령도에 남겨진 거타지는 노인의 부탁을 완수하고 노인의 딸과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이 설화 전반부의 제비뽑기 끝에 거타지가 남겨진 행위가 인신공희에 해당된다. 이러한 내용은 소설 「심청전」에서 중국 상인들이 인당수라는 곳에서 심청을 제물로 바친 후 무사히 항해했다는 내용과 유사하다. 그래서 ‘거타지 설화’는 소설 「심청전」의 배경 설화이며, 백령도가 「심청전」의 주 배경이 되는 곳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백령도에는 심청과 관련한 설화가 60개 이상 전해진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수의 심청 관련 설화가 백령도에 전승되는 이유로는 백령도의 설화 전승자들이 소설 「심청전」의 배경이 백령도라고 믿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청전」의 공간적 배경이 백령도와 인접한 황해도라는 점, 소설의 중요 모티프인 인당수나 연꽃과 관련된 지명이 백령도에 있다는 점, 그리고 「심청전」의 또 다른 중요 모티프인 인신공희 설화가 여러 편 전해지고 있다는 점 등 설화 전승자들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백령도의 심청 관련 설화가 인당수나 인신공희와 관련된 내용, 연꽃을 통해 환생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은 이를 잘 증명해 준다. 

소설 「심청전」의 주 배경이 백령도인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심청전」의 배경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전남 곡성이나 전북 부안 등의 여타 지역보다는 백령도가 심청전의 배경지라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더 설득력을 지닌다. 이는 인당수나 연꽃바위 등 심청 관련 유적은 차치하고라도 전해지는 심청 설화의 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설화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있어 소중한 자산이 된다. 이런 면에서 다양한 심청 설화가 전해지는 백령도는 심청과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있어 분명 유리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소설인 「심청전」의 유력 배경지 백령도.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백령면이나 옹진군, 더 나아가 인천시는 심청 설화를 통해 심청 관련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백령도가 심청의 고장이라는 점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